서해상의 낙조
어허 저거 물이 끓는다. 구름이 마구 탄다.
둥둥 원구가 검붉은 불덩이다.
수평선 한 지점 위로 머문 듯이 접어든다.
큰 바퀴 피로 물들며 반이나마 잠기었다.
먼 뒷섬들이 다시 환히 얼리더니
아차차 채운만 남고 정녕 없어졌구나.
구름 빛도 가라앉고 섬들도 그림 진다.
끓던 물도 검푸르게 잔잔히 숨더니만,
어디서 살진 반달이 함(艦)을 따라 웃는고.
/이태극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학자 시인 이태극. 그 이름은 곧 현대시조사다. 이론 정립과 창작의 저변 확대로 시조 문학을 오롯이 세웠다. 가산을 털거나 월급을 밀어 넣는 '시조문학' 발간도 37년이나 기꺼이 감당했다. 그 노력과 열정에 힘입어 시조가 이만큼 왔다.
이 작품은 전개가 참 시원하다. 시작부터 터지는 감탄사에 배에 같이 선 듯 선연하다. '물이 끓'고 '구름이 마구' 타는 서해 낙조, 그것도 함에서 본 낙조니 얼마나 장관이었을 것인가. '채운만' 남기고 바다로 뚝 떨어지는 '검붉은 불덩이'! 그렇게 사라져간 해와 웃으며 나타난 '살진 반달', 그 둘이 '어허'와 '아차차' 사이에 있다. 절묘한 감탄이다.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