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두레 2013. 4. 27. 05:17

글 찾기(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해마다 봄이면 벚꽃 개화 예상도가 발표된다. 한반도를 지나가는 벚꽃의 날짜별 등고선이다. 여름철 태풍의 진로를 예상한 지도와 닮았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찬란한 웃음판들의 이동 속도와 진로를 본다고 해야 할까?

 

그 지도를 한참 보고 있노라면 꽃은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저 아득한 남쪽 어디에서부터 비롯하여 밀물져 밀려오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그 꽃들의 집단적 걸음걸이는 내가 사는 고장을 지나 내가 사는 산천을 뚜벅뚜벅 걸어서 벗어나간다. 그 꽃들의 등고선이나 따라가며 살아보는 것은 어떤가…하다가 문득 깨어난다.

 

봄은 '한눈도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는' 모습일 수 있다. 봄은 도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란 것, 그보다 더 크게, 피투성이 흙투성이로 온다는 것을 이 시는 지난 엄혹한 시대에 보여주었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

'시 두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었다  (0) 2013.05.01
산행  (0) 2013.04.28
수직으로 내리는 비는 둥글다  (0) 2013.04.26
한 송이  (0) 2013.04.24
내 몸이 비어지면  (0) 2013.04.23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