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허공에 매화가 왔다.
그리고 산수유가 왔다.
목련이 왔다.
그것들은 어떤 표정도 없이
가만히 떠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쭈욱 빼고 내려다보았다
그저 말없이 내려다보기만 하다가
매화가 먼저 가고
목련이 가고
산수유가 갔다 /고영민
아랫녘엔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다. 옛사람 같으면 몇몇 고우(古友)들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며 매신(梅信·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축하했을 것이다. 그윽한 담소가 봄 들어 처음 입은 흰 두루마기 구겨지는 사이 사이에 볕살처럼 부서져 내렸으리라. 홍매는 붉게, 청매는 푸르게, 백매는 희게 고생 많았다. 그 먼 길, 봄을 끌고 오느라고.
도서관에 사람만 다니는 것은 아니다. 거기 매화가, 산수유가, 목련이 다닌다는 걸 시인이 아니면 누가 눈치나 채겠는가. 사람들은 책을 읽겠으나 그 ‘우주의 시민들’은 거기 온 사람들을 읽는다. 가만히, ‘고개를 쭈욱 빼고’ 내려다본다. ‘그저 말없이 내려다’본다. 그 눈빛, 참으로 처음 보는 지혜와 ‘맑음’의 그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책만 보러 가겠는가. 매화를, 산수유를, 목련을 읽으러 가지 않겠는가. 또한 그 꽃들이 읽어주는 지혜를 앞섶을 펼쳐서 받으러 가지 않겠는가. 공짜다! 매화, 산수유 가기 전에!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