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생각
다 같이 출발했는데
우리 둘밖에 안 보여.
뒤에 가던 달팽이가
그 말을 받아 말했다.
걱정 마 그것들 모두
지구 안에 있을 거야
/김원각
설렘과 기대로 부푸는 삼월이다. 새로운 시작 속에 곳곳의 아침들이 싱그럽게 소란스럽다. 하지만 그에 따른 긴장과 불안지수 또한 높아지는 달이다. 더구나 진학 같은 중요한 출발을 놓친 사람이라면 시작하는 대열에 끼지 못한 낙담이 무척 클 것이다. 좌절과 절망의 쓰디쓴 시간을 견디며 칼을 갈아도 가지 못한 길 쪽으로 눈이 자꾸 가고 마음도 영혼도 하염없이 아프리라. 그런 입장을 생각하면 언 땅이 풀리는 중에도 속눈물로 쌓는 얼음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낙오의 쓴잔을 되작이는 참담한 시간도 결국은 간다. 이 달팽이들처럼 조금 느리게 가는 것뿐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면 또 다른 힘을 길어올릴 수도 있다. 아무리 앞서서 달려가는 사람이라도 다 '지구 안에 있을' 터이니 크게 보면 '그것들 모두' 같은 지구 안에서 같은 시간대를 살다가 비슷한 때에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돌아보니 어디선가 '걱정 마' 하는 속 깊은 위로가 들려온다. 괜찮아, 조금 더 다져서 내 식대로 갈 뿐이야.
/정수자·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