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옷들로 거리가 한층 어둑해졌다. 어둠이 길게 들어앉으며 이런저런 반추(反芻)도 늘었다. 돌아보면 늘 아쉬운 게 많은 나날, 그래서 우린 때때로 겸허해지는 걸까. 늦은 식탁에 초를 켠다. 올해 난 어떤 그릇이었나. 얼마만한 품으로 일과 삶과 사랑을 담아왔나. '너를 사랑함도 그릇 하나 갖는 일'인데, 그릇은 좀 더 키웠는가. '모난 것도 한때의 일'이라지만 둥글게 낮아지며 '낡은 그릇'처럼 편안해지기는 또 얼마나 어려웠던가. '나'라는 그리고 '시(詩)'라는 또 다른 그릇 앞에 마음을 깊이 숙인다. /정수자·시조시인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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