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 안개가 잦다. 가령, 사춘기나 갱년기 무렵 말이다. 이 시는 후자의 안개 낀 풍경을 자세히(뼈가 만져지도록) 들여다본다. 안개는 짙고 그 속에서 우리는 춥다. 차고 흰 머리카락과 앙상한 나뭇가지, 불 켠 경비실은 차분한 비극의 무대다. 좀 더 명확한 쪽으로 향하고 싶었던 사상(思想)도 그만 '이목구비'를 잃는다. 터무니없이 부서지고 마는 오각형(거미줄)의 방 혹은 아무 데서나 살 수 있는 양서류(兩棲類)의 생각 같은(이라니! 그 변덕 말인가!) 영혼이 필요하다니. 게다가 이런저런 뜬금없는 소문들이 성인병처럼 오고 육신은 겨울 내내 짖어댄다. 그 쩨쩨하고(?) 빈틈없는 '은행원'들까지 신비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 신비로운 표정은 어쩌면 의문의 그것으로, 공포의 그것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존재를 덜어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 '처음 보는 얼굴'들로 바뀐다. 자화상은 늘 처음 보는 얼굴이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