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있는 자화상

시 두레 2012. 11. 29.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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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있는 자화상

 

오늘은 안개 속에서

뼈가 만져졌다.

뼈가 자라났다.

머리카락이 되고 나무가 되었다.

희미한 경비실이 되자 겨울이 오고

외로운 시선이 생겨났다.

나는 단순한 인생을 좋아한다.

이목구비는 없어도 좋다.

이런 밤에는 거미들을 위해

더 길고 침착한 영혼이 필요해.

그것은 오각형의 방인지도 모르고

막 지하로 돌아간 양서류의

생각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

또는 먼 곳의 소문들개들에게는 겨울 내내

선입견이 없었다.

은행원들도 신비로운 표정을 지었다.

조금 덜 존재하는 밤,

안개 속에서 뼈들이 꿈틀거린다.

처음 보는 얼굴이 떠오른다. /이장욱

   계절이 바뀔 때 안개가 잦다. 가령, 사춘기나 갱년기 무렵 말이다. 이 시는 후자의 안개 낀 풍경을 자세히(뼈가 만져지도록) 들여다본다. 안개는 짙고 그 속에서 우리는 춥다. 차고 흰 머리카락과 앙상한 나뭇가지, 불 켠 경비실은 차분한 비극의 무대다. 좀 더 명확한 쪽으로 향하고 싶었던 사상(思想)도 그만 '이목구비'를 잃는다. 터무니없이 부서지고 마는 오각형(거미줄)의 방 혹은 아무 데서나 살 수 있는 양서류(兩棲類)의 생각 같은(이라니! 그 변덕 말인가!) 영혼이 필요하다니. 게다가 이런저런 뜬금없는 소문들이 성인병처럼 오고 육신은 겨울 내내 짖어댄다. 그 쩨쩨하고(?) 빈틈없는 '은행원'들까지 신비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 신비로운 표정은 어쩌면 의문의 그것으로, 공포의 그것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존재를 덜어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 '처음 보는 얼굴'들로 바뀐다. 자화상은 늘 처음 보는 얼굴이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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