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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

 

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

서너 달에 한 번쯤 잠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오는 습관을 버거워하면 안된다

 

서너 달에 한 번쯤,

한 세 시간쯤 시간을 내어 버스를 타고

시흥이나 의정부 같은 곳으로

짬뽕 한 그릇 먹으러 가는 시간을 미루면 안된다

 

죽을 것 같은 세 시간쯤을 잘라낸

시간의 뭉치에다 자신의 끝을 찢어 묶어두려면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하는 운명을

모른 체하면 안된다

 

자신이 먹는 것이 짬뽕이 아니라

몰입이라는 사실도,

짬뽕 한 그릇으로 배를 부르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타이르는 중이라는 사실까지도   /이병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궁극적으로 길들지는 않는다. 그게 나의 믿음이다. 다만 조화로울 뿐이다. 저 멀리, 인류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먼 시절 우리는 야생(野生)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본연의 모습은 한군데 머물지 않는다. 실은 운수납자(雲水衲子)가 본모습에 가깝다. 계절에 따라 '서너 달에 한 번쯤은 거처를 옮겨야' 맞다. 그렇지 못하니 우리들의 심신은 으르렁댄다. 주일에 한 번쯤은 '시흥이나 의정부 같은 곳으로 짬뽕 한 그릇 먹으러 가야' 한다. 그것은 우리들의 '저 먼, 젊은 시절'의 습관이다. 젊은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 배를 찢고 머리를 들이밀어 몰입하는 모습인 것이다. '일만여' 나라를 어슬렁거린 이 시인의 경험과 통찰이 빛난다. 내가 줄 서는 것이 극심히 싫은 까닭, 내가 길들 수 없어서 괴로운 이유를 짚어준다. 제발 나를 놓아다오! '의정부'쯤의 짬뽕 집으로 나를 '타이르러' 가야겠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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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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