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日田家卽事(추일전가즉사) 가을날 농가 풍경
節近西成天氣凉 (절근서성천기량) 추수철이 다가오며 날씨가 서늘하니
田家風致若爲量 (전가풍치약위량) 농촌의 멋진 풍치 꼽아 봐도 좋겠구나.
銀唇出笱肯盤雪 (은순출구긍반설) 통발에서 꺼낸 은어 소반 위에 회가 되고
靑殼登床可鼎湯 (청각등상가정탕) 상에 오른 검정 게는 솥 안에서 끓고 있다.
滿樹丹璾方曜日 (만수단제방요일) 나무 가득 붉은 과일은 햇살에 반짝이고
盈枝金粟已經霜 (영지금속이경상) 황금빛 벼이삭은 벌써 서리를 맞았다.
簷前老菊尤堪賞 (첨전로국우감상) 처마 앞에 늙은 국화는 한결 어여뻐서
須把黃鬚泛玉觴 (수파황수범옥상) 노란 꽃잎 따다가 술잔에 띄워야지.
/이응희(李應禧·1579~1651)
수리산 아래 경기도 군포시 산본에서 평범한 시골 선비로 한평생을 살다 간
이응희의 시다. 노랗게 물든 가을 논을 바라보며 "장관이다, 장관이여!"라고
흐뭇하게 외친 농부가 떠오른다. 농부에게 그보다 장엄한 풍경은 없으리라.
가을의 풍성함은 눈길 돌리는 데마다 보인다. 은어도 게도 넉넉하게 밥상에
오르고, 사과도 감도 햇빛에 반사되어 붉게 번쩍인다. 술잔에 노란 국화꽃잎
하나 띄워 마실 멋도 부리게 만든다. 가을의 들녘은 해가 막 넘어가는 무렵의
낙조(落照)처럼 장관이다. 가을이 무르익는 들로 나가고 싶어진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