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張生希稷下第後歸海西婦家
(송장생희직하제후귀해서부가)
시험에 떨어지고 황해도 처가로 돌아가는 장희직을 배웅하다
獨携書笈別親闈(독휴서급별친위) 책 보따리 달랑 들고 부모 곁을 떠났건만
久客偏憐眊矂歸(구객편련모조귀) 객지에서 고생 끝에 실의하여 돌아가네
攀桂可堪今日恨(반계가감금일한) 과거에 급제 못한 오늘의 한 어찌 풀까
敦瓜嬴得隔年違(돈과영득격년위) 고향의 박 넝쿨은 이태 넘게 못 보았네
愁邊海月團團影(수변해월단단영) 자넨 시름겹게 바다의 달만 보며 가고
望裏江雲片片飛(망리강운편편비) 나는 구름 조각 떠가는 강하늘만 응시하네
却想秋閨粧淚盡(각상추규장누진) 그래도 눈물 마른 규방의 아내가 안쓰러워
何心更斷錦文機(하심갱단금문기) 또다시 베를 잘라 귀향 편지 쓰게 하랴
/장유(張維·1587~1638)
조선 중기의 명신 계곡(谿谷) 장유가 과거 시험에 떨어지고 처가로 돌아가는 사람에게 써준 시다. 원래는 '시험에 떨어지고 황해도 처가로 돌아가는 장희직을 배웅하다'란 긴 제목이다. 1000년 이상 시험으로 인재를 뽑는 제도가 유지되었기에 출세하려면 과거 시험이란 좁은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그때도 과거 시험공부의 최적지는 서울이라, 몇 해 동안 객지 생활을 했으나 보람도 없이 낙방하고 말았다. 어떤 위로도 그에게 힘이 되지 못하겠지만 장유의 시는 그의 눈물샘을 자극할 것 같다. 책 보따리 달랑 들고 시험에 매달린 사람들이 서울 하늘 아래는 지금도 많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 한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