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진

사적跡蹟迹 2012. 8. 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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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진 

경복궁 향원정(香遠亭)

경복궁 향원정(香遠亭)경복궁 후원의 정자.인공연못인 향원지에 작은 섬을 만들고 2층 정자를 세워 나무 구름다리 취향교(醉香橋)를 통해 건너 다니게 했다. 아래와 위층이 같은 크기이며 겹처마와 육모지붕으로 단장한 화려한 정자다. 고종 초기인 1860~70년대에 지어졌는데, 추녀마루가 모이는 곳에 탑 모양의 기와장식을 얹어 치장했다.

덕수궁 함녕전(咸寧殿)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일대 원래 경운궁(慶運宮)으로 불리던 덕수궁은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퇴위하고 머물면서 궁호가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함녕전은 황제의 침전으로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이 환궁하며 세운 전각인데, 1904년 화재로 소실돼 중건하였다. 1919년 1월 고종은 이곳에서 승하했다.



창덕궁 부용지(芙蓉池)
창덕궁 부용지(芙蓉池)와 주합루(宙合樓)창덕궁 후원에 있는 연못과 누각. 낮은 골짜기에 연못을 만들고 부용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어수문(魚水門)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2층 건물이 나타난다. 1층 규장각(奎章閣)은 수만 권의 책을 보관하던 서고였고, 이층 주합루는 도서를 열람하며 풍치를 즐기던 곳이다.



경복궁 건청궁(乾淸宮)
경복궁 건청궁(乾淸宮) 일부명성황후(明成皇后)가일본인 낭인자객들에 의해 시해당한 을미사변의 현장이다.1873년 창건되었으나 국권피탈 후 일제가 헐어버렸다.

 



궁중연회 뒤 기념촬영

궁중연회 뒤 기념촬영궁중 연회에서 가무는 주로 의녀(醫女)들이 맡았다.의녀들은 의술 이외에도 악기와 노래, 춤을 배워야 했다.사진은 덕수궁에서 연회를 마친 뒤 양복 입은 귀빈을 모시고여악(女樂)을 맡았던 기녀들이 앞에, 장악원(掌樂院) 악사들이 뒤에 서서 기념촬영한 것으로 짐작된다.
 
 
돈의문(敦義門)=서대문
돈의문(敦義門) [서대문]서울 신문로2가에 있던 조선시대 서울의4대문 중 하나. 경희궁터에서 독립문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1915년 일제가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 확장을 이유로철거해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서울 종로6가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문.적을 막기 위해 반원형의 평면을 이룬 옹성(甕城)을 쌓았다.1869년에 대대적으로 개축해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준다.사진 왼쪽에 전차표 판매소가 보인다.

비각
비각1902년 고종의 즉위 40돌과 51세가 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 장방형 대리석에 ‘대한제국이황제보령망육순어극사십년칭경기념비송(大韓帝國李皇帝寶 齡望六旬御極四十年稱慶紀念碑頌)’이라는 전액(篆額사면에 둘렀는데, 훗날 순종이 되는 황태자가 쓴 글씨다.비를 보호하기 위해 기념비전을 세웠다.

러시아공사관
러시아공사관덕수궁 북쪽에 건립된 단층의 벽돌 건물. 한국전쟁 당시 본관이 파괴되어 지금은 종탑만 남아 있다.1896년 2월 고종이 일본 감시하의 경복궁을 벗어나 파천하여 1년간 머무른 곳으로 유명하다.

한강철교
한강철교서울의 용산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철도교. 1899년 9월 노량진과 인천 사이 경인선이 개통된 뒤 1900년 7월 한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철교가 완성되었다. 경인선 부설권은 애초 미국인이 가지고 있었는데일본이 이를 인수하여 완성한 것이다.  한강철교는 너비 약 5.1m, 높이 약 11.3M 길이 약 630m로 경인선 부설 공사 중 최대 난공사였다. 현재의 철교는 한국전쟁 중 파괴된 것을 복구한 것이다.

독립문
서울 현저동에 있는 대한제국 시기의 석조문으로 높이 14.28m, 너비 11.48m 며 독립협회의 발기로 1년간의 공사를 거쳐 1897년 11월20일 완공되었다. 1980년 1월 고가도로가 나면서 이전돼 현재는 원위치에서 서북쪽 70m 떨어진 곳에 있다.

원각사비
원각사비 탑골공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 1471년에 건립된 것으로 높이 4.9m, 비신(碑身) 너비 1.3m이다. 보물 제3호. 귀부(龜趺)는 화강암, 비신은 대리석이다.탑골공원에서 놀던 아이들이 사진의 모델이 되었다.

북한산 산영루
북한산 산영루 북한산 자락에 있던 누각. 현재는 주춧돌만 남았지만 사진을 들여다보면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정취를 즐기던시인묵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포 풍경
마포는 용산강이 합류하는 한강 북안의 포구로,삼남지방에서 올라오는 곡식을 부리던 교통의 요지였다.포구 주변의 경치가 수려해 시인묵객들이 즐겨 이곳의 경치를 예찬했다.인근에 정자나 누각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한의원1907년 세운 국립병원 겸 의학교로,

일본인들이 의료사무를 관장하던 기관이다.종로구 연건동 마두산 언덕에 있는 이 건물은 1908년 5월 준공되었는데, 붉은 벽돌 2층 건물로 중앙에 시계탑을 배치했다.현재 서울대학병원 구내 의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통감 관저

통감 관저1905년 11월 을사조약의 강제체결과 동시에한국의 내정을 장악한 일본은 통감부를 설치했다.처음엔 남산 기슭의 일본공사관 건물을 사용하다가1907년 벽돌로 2층 건물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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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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