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1.001003 옛날 얘기
누구든지 어릴 때엔 동요나 동화를 끈임 없이 받아들여서 자기 나름대로 제 마음의 흰 바탕에다 알록달록 색칠해 나간다.
난들 예외일 수 없고, 그 몫을 세 살 위의 누나가 줄 대어 갔는데 누나의 얘기그릇이 바닥이 났다. 모두가 단편적이고 권선징악을 줄거리로 하는 얘기들이지만 그런 소재도 바닥이 났다. 누나의 상상력은 한계가 있었고 들은 이야기에 살을 붙이거나 빼먹는 게 일수였을 터다. 얘기 꼬리를 잊어버려서 쩔쩔맬 때엔 안쓰럽기도 해서 고개를 끄떡이긴 해도 마음엔 그 얘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누나는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순서대로 얘기를 하긴 해도 대개 시작하고 나서 내가 다음 오줌 눌 참이 되면 끝이 흐려진다. 그러면 나는 허전해지고 그 이야기를 잇고 싶기도 하고 뒷얘기가 어떻게 해서든지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재촉한다. ‘그 다음은?’ 내가 물으면 ‘아들 딸 낳고 잘 먹고 잘살았대!’ ‘그래서?’ 또 물으면 이번에는 ‘그 아들이 장가가서 또 아들 딸 낳고 잘 먹고 잘 살았대’ 이쯤 되면 나는 그만 흥미를 잃고 만다.
하기는, 듣기 좋은 얘기는 죄다 허구이고 마무리 뒷이야기 ‘아들 딸...’이 우리네 삶의 진정한 줄거리니까. 사회에 공헌한다, 남을 돕는다, 모두 도도히 흐르는 ‘아들딸...’흐름의 강줄기에서 밀려나 기슭의 바위틈이나 한 용소에 불과하니 얘기는 제대로 한 것이다.
얘기가 끝나는 것을 싫어하는 나의 ‘그래서?’의 고질을 어떻게든 입막음을 하기 위해서 집안에서는 대작전(?)이 시작되었다.
때는 긴긴밤을 무엇으로든지 때워야하는, 시골에선 삼 삼기와 가마니 짜기를 하게 되는 겨울철이다. 나도 학교에 아직은 몇 살을 더 먹어야 가게 되고, 그래야 뭐 몸부림거리가 있을 텐데, 아직은 일의 방해꾼 밖에 되지 않는 미운 여섯 살쯤 일게다.
발동이 걸렸다. 누나에게 얘기를 하란다. 식구 모두가 아버지의 얘기보따리를 은근히 자랑하고 누나의 짐을 벗긴다.
나는 아버지 턱밑에 바싹 붙어 앉아서 눈알을 굴리는데, 아마도 단단한 각오로 물리칠 뜻이 계셨는지 진지하게 얘기를 시작하시고 찬찬히 이어가시는데, 귀신 얘기부터 시작돼서는 호랑이 얘기로 옮기고 효자얘기로 건너서 고기 배 얘기로 튀어간다.
이야기가 이번에는 옥황상제로 올라가서는 또 어떻게 하다가는 바다 속 용궁으로 들어가서는 도로 산으로 들어간다.
이게 웬일인지 재미는 줄줄이 꿀같이 흐르는데 도무지 끝이 없다. 내가 잠들어서야 얘기가 중단 됐을 것이고 아마도 내 꿈속에서도 얘기는 이어 졌을 것이다.
다음날 낮에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저녁만 먹으면 조른다. 이날도 얘기는 전날의 얘기를 이어서 계속됐다. 또 사흗날이 어두워지니 기다렸다는 듯이 턱 바친다. 무려 사흘이나 이어졌는데도 끝은 나지 않고 끝날 기미도 없다.
얘기가 워낙 길고 복잡하니 그 갈피를 잡을 길도 없고 아버지도 무슨 줄거리를 갖고 얘기하시는 것이 아니니 그저 그때그때의 말꼬리만 놓치지 않으면 되는 것이기에 부담 없이 시간 때우기다.
자장가다. 나흘 째 되는 날도 이어졌다. 이번에는 듣는데 진력이 난 내가 끝도 없는 옛날 얘기가 어디 있느냐 하면서 주리를 틀기 시작하다가는 홱 밖으로 나가 버렸다.
식구들의 나 따돌리기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 뒤부터는 아무에게도 옛날 얘기를 조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렇게 사흘이나 일손을 흩고 멈추시며 정성을 다하여, 먼 장래에 닥칠 허구와 진실의 가름을 스스로 해야 하는 아들에게 식별능력의 작은 씨 한 알을 심어주셨다. /외통-
자신에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에 이긴다.(밝은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