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도 잘 쓰시고 책도 잘 읽으시는 아버지의 학력은 서당중퇴인지 아니면 서당 문 앞에도 못 가본 분인지 알 수 없다. 수줍은 내가 그 어마어마한 비밀을 알아낼 방도는 전혀 우리 집을 중심으로 해서는 없었다. 그렇다고 남의 집에서 우리 집의 내력을 알려고 할 만큼 얼뜨지도 않은 나였으니 그냥 짐작이나 할 따름이다.
그저 보통 사람이 하듯이 천자문이나 떼었을 정도로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 아버지의 글공부를 모르는 내가 아버지의 가르침을 파고 알아들으려 할 턱도 없지만 이미 다른 시대에 살면서 한문을 가르친다고 한들 알아들으려고 할 리도 없다. 굳이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으시는, 때가 이미 일제 말기이니 그때에는 오히려 한자보다 일본말이 더 급한 형편이 돼 있었기에 아버지와는 서로 글을 숨기고 말만 앞세우는 꼴이 돼서, 더 글의 쓰임새가 닫쳤는지 모른다.
남들이 다 다니는 서당엘 중도 지폐 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가업을 잇고 자수성가의 숙명을 안고 태어나신 아버지의 짧은 삶은 이 세상 어떤 아버지의 뜻보다 높이 사고 본받는, 내 일생을 지키시는 일을 저승에서도 끊임없이 이룩하고 계실 것이다.
생각이 고르고 지향이 같은 폭 안에서 살면서 피차가 이루지 못했든 포부를 털어놓고 뜻을 이야기하는 그런 세상은 영 불가능한가.
왜,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져야만 하나. 슬하에서 짧게 보냈지만 너무나 아쉽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