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공

외통넋두리 2008. 6. 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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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공

1547.010302 탁구공

 

금강산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누나가 대나무뱀과 핑퐁 한 알을 사다 주었다. 그중 대나무 뱀이 동생 몫이 되고 핑퐁이 내게 차례 졌다. 핑퐁은 작아서 주머니에 들어가니 좋고 아무데나 가릴 것 없이 퉁겨서 놀면 되는 것이기에 더욱 좋았다.

 

누나의 선물핑퐁이 내가 처음 쥐어본 것이고 그 다음 이날까지 핑퐁을 만져보질 못했던 것은 아마도 내 성정 탓도 있겠지만 내게 아무리 가까이 있는 핑퐁이라도 나와 핑퐁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우선의 일상들이 차례로 줄지어 있는 것으로 해서 그 순위가 밀려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나의 선물 핑퐁은 받은 기억밖에 나지 않으니 아마도 그것으로 퍽 재미있는 일들이 꾸며지지 않았던 것 같다. 모름지기 핑퐁의 성질이나 그 쓰임새가 구슬보다는 못 한 것 같아서 곧 싫어졌을 것이다.

 

만물의 기초가 동그라미라고 하더니 과연 그런 것 같다. 원생동물의 원형질이 그렇고 생선의 알이 크건 작건 모조리 둥글고 모든 인공적 가공품의 대개가 그렇다.

 

심지어 우리가 사는 지구도 둥글다고 한다. 그보다 눈을 크게 떠서 보면 우주가 그럴 것이다.

 

아니 달걀도 갸름하고 오리 알도 갸름하고 구렁이알도 갸름한데 무슨 소리냐고 할 것이지만 그것은 그들 몸 밖으로 나오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지 알들의 노른자는 어김없이 둥글 것이다.

 

공()이니까 둥글겠지만 공이란 이름하에 공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공 아닌 공도 버젓이 공의 반열에서 행세를 하는 것을 보면 좀 더 그 생김새에 따라서 자세하게 불렀으면 좋겠는데 부르는 이름을 더 가를 수가 없어서 그냥 내버려두는 건지, 아니면 기어이 공의 반열에 올려야 노름이 되고 경기가 되는 것인지 시비를 가리고(?) 싶다.

 

골프공이 그렇고 럭비공이 그렇다. 둘 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 그렇게 깎고 삐쳐서 만들었겠지만 그 목적이 서로 달라서 재미있다.

 

골프공은 목표에 정확히 닿게 하고 탄력을 더하기 위해서라면 럭비공은 그 반대로 퉁기는 방향을 가늠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일 테니 이 두 종류의 차가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골프가 자기중심적이고 정적인 운동이라고 한다면 럭비는 상대와의 격렬한 몸싸움에서 이룩되는 성취의 쾌감을 얻고자 하는 무한 도전적 운동이다.

 

헌데 공을 깍은 이유가 여기에 합당해야하련만 그렇지 못하고 조금은 거리가 있다.

 

골프공이 핑퐁이나 정구공모양으로 매끈한들 어떠랴, 어차피 같은 조건 하에서 친다면 상관없을성싶은데, 신사들의 마음이 엉뚱하게 날아가는 공을 보아 넘길, 체면의 손상을 묵과할 수가 없는 노릇이기에, 조금이라도 체면손상이 덜 되는 쪽으로 생각다보니 곰보 공이 됐을 것이고, 럭비공은 선수끼리의 너무나 공격적 충돌을 막고 첨예한 충돌을 분산 내지 무산시키고 예측이 불가능한 쪽으로 만들어 보려는 노력의 산물로 길쭉한 모양으로 됐을 것이다. 둘 다 그 밖의 합당한 이유가 덧붙어 있을 것이다.

 

골프 치기나 미식축구를 모르면서 늘어놓는 장외의 사설이 실제와의 접근이 어느정도인지는 이들 운동을 할 줄 아는 분들의 몫이다.

 

공의 크기가 운동의 종목에 따라서 매양 같지 않으니 무수히 많은 유형의 공을 다 만지고 다 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 중의 어느 한가지만이라도 전적으로 거기에 매달려서 사는 사람은 지극한 행복을 누리는 축의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흥미와 취미를 함께, 공 놀기를 생활의 전부로서, 생활 속에 녹여서 살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야생마와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생을 누린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이 부럽다.

 

나는 한 가지도 못한다. 그 중에 몇 가지만 만져 본 것이 고작일 뿐이다. 한 생을 살면서 눈으로 보고 체험한 것 중 제일 작은 탁구공이 내 마음을 늘 무겁게 짓누르곤 한다.

 

중학교라고 발 들여놓은 곳에는 운동기구란 아무것도 없었다. 불모지에서 시작하다보니 탁구대가 있을 수 없고 정구장이 있을 리 없고 축구장은 언감생심이다. 해서 가교사의 교실 앞에 놓인, 교실로 들어가는 문턱에 네모지게 돋우어서 만든 발 디딤 현관 바닥에다가 가로줄을 긋고 여기를 탁구대로 가정하여 노닐고, 때로는 거기가 정구장으로도 되고 오만 축지(縮地)의 술을 다 써가며 놀던 생각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어도 옛날과 겹쳐서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보았을 때, 아무것도 아닌 내가 심히 부끄럽게까지 느낀다. 누구에게 부끄러운가? 그 대상은 나다. 내가 내게 부끄러울 뿐이다.

 

시골의 어느 가정집 뒤뜰에 버젓이 탁구대가 놓여 있고 금방 어린이들이 공을 치고 들어갔는지, 공과 채가 그 탁자 위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눈앞에 보이는 이 황홀하고 딴 세상 같은 장면을 보고는 발을 떼지 못했다. 그때까지 나는 정지된 시간에서 살았던 것이다.

 

세월이 또 흘러서 온갖 기구가 다 갖추어진 체육관에 다니면서도 탁구의 배필이 없어서 늘 먼데서 바라볼 뿐, 다른 운동에만 열심인 내가 느끼는 또 하나의 작은 파장은 이러했다.

 

저 작은 공이 세계의 경찰인 미국과 세계를 중화권으로 흡수용해하려는 듯 거대한 인구를 갖고 있는 중국이 동서화해의 효시로써 퉁겨 지구를 녹여서 탁구공 속으로 집어넣었으면서도 가장 가까이 있는 내 작은 몸 하나를 어찌하여 녹이지 못하는가. 아직 냉기류는 내 작은 몸을 감싸고서 녹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작게 아주 작게 탁구공보다 작게 조여서 머물다, 점 하나로 삭아들었다.

 

탁구공을 선물한 누나와 나의 만남은 미국과 중국의 화해보다 더 크고 더 무거운 것이다. 우리남매의 핑퐁 만남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아득하다. /외통-

미래는 현재에 의해서 얻어진다.(S.A.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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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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