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버리기 쉬운 것 중에는 어린이를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어른들의 무관심, 어른 중심의 언행도 그 하나로 꼽을 수 있으리라.
세상을 하직할, 이런 나이가 되도록 생생히 기억되는 일이다. 때로는 어깨가 처지도록 의문을 삭이기도 하려니와 더러는 어른들에게 묻기는 하지만 대답은 이해할 수 없다. 어른들만의 기류에 실어서 대답할 따름인데 내가 탈 수는 없기에 체념하곤 했든, 지난 일들이 너무나 많다.
사람이 자기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을 평생 간직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에 있어서는 중요한 대목으로 새겨졌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학자들도 어린이 바른 교육을 그토록 부르짖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안은 오래 한곳에 머물러 살아온 토박이기에 그동안 손이 여러 갈래로 벌어져 커졌다. 하나, 우리 집은 명맥만이 큰집이 돼 있을 뿐 그 명색을 다하지 못하는데도 봉제사(奉祭祀)만은 ‘줄줄이 사탕’이다. 그래도 오래 이어온 종갓집이라 다른 집에는 없는 물건들이 더러 전해져 있어서 그런지, 아주 작은 오두막집이었는데도 용한 것들이 나온다.
작은집에서 빌려 가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옛날 물건들이고 우리 집에서 빌려 오는 것은 모두 신식물건들이다. 그러니 사고(思考)에서의 신ㆍ구의 차이가 여기서도 나타난다. 또 그 물건을 장만한 분들의 생각도 앞서있을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게 내 마음을 후벼 파는 대목이었다.
작은 집에서는 둘이 들어가도 될 만한 큰 함지박을 목욕용으로 빌러 가는 데 우리 집은 머리 깎는 '이발기(理髮器:바리깡)'을 빌려와야 하고, 작은 집에서 기제사 때 병풍을 빌려 가는가 하면 우리 집은 타작 때 바람개비를 빌려 와야 한다. 꿩 꼬리로 만든 보드라운 먼지떨이를 빌려 가는가 하면 중절모자는 빌려 온다.
제사 때 쓰는 그릇도 작은집 것은 은빛 나는 양은그릇이고 우리 집 것은 구릿빛 나는 놋그릇이다. 제사상도 작은 집 것은 다리가 높은 것이고 우리 집 것은 ‘앉은뱅이’ 평상이다.
집도 작은집은 작아야 할 텐데 우리 집보다 크고 마당도 넓어서 텃밭도 있고 밤나무도 여러 그루 널려 있는 집이다.
손이 일찍 벌어서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으시니, 큰아버지가 됐고, 다음 대에도 당연히 우리보다 형뻘이 됐다.
이제 돌이켜 생각하면 이 모든 불균형은 할아버지께서 집안을 돌보지 않으시고 객지로 나다니시며 물려받은 전답과 물려받은 집을 ‘말아’ 드셨기 때문이라는 나 홀로 생각이다.
해서 족보의 관리도 할아버지가 안 계시니 작은댁 할아버지께서 관리하시게 되었고 이것이 우리 할머니와 작은할머니의 갈등 요인이 되기도 했다.
보관만이라도 우리 집에서 해야 한다는 단순 이유가 우리 할머니의 주장이지만 실상은 그 족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작은할머니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안 계셨으니, 작은집 할머니의 생각이 모두 옳을성싶다.
한 가정의 성쇠(盛衰)는 그 집 가장의 바른 생활 속에서 모두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그래서 그 후손들 또한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내 생각이 부조(父祖)를 욕되게 하는 망언이 아니기를 애써 바란다. 그나마 아버지의 자수성가가 우리에게 많은 위안을 주신다. 마땅히 존경한다.
이 모두 본보기로 하여 진력한다면 진폭의 가장자리에서 한가운데로 복원되고, 이어 요동 없이 나아갈 것이다.
어렸을 때 이런 이치를 또렷이 알았더라면 내 생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