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날을 어린이 울음소리 한번 듣지 못하고 절간처럼, 늘 고요만 가득하든 고모네 집에 어느 날부터 활기와 웃음이 집안 가득히 차 넘쳤다.
방학을 마치고 다음 학기를 또 고모네 집에서 성가시게 할 요량으로 짐 보따리를 끌렀을 때,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귀여운 사내아이가 뜰 안을 휘젓고 있었다. 언제 알아차렸는지 내 가랑이를 잡고 오랜 시간을 함께 있었던 삼촌이라도 만난 듯이 반겼다. 반짝이는 눈망울을 굴리며 식구들의 반응을 살피면서도 새로운 식구 하나를 스스럼없이 반겨 기뻐 날뛴다. 그도 그럴 것이 저하고 맞상대가 될 만한 사람은 고모네 집엔 아무도 없는데 내가 나타났으니, 원군을 얻어 적진을 공략하는 장수의 기쁨이 이에 비길 수 있었겠나 싶다. 연달아서 고모를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부르고 쳐다보더니 나와 고모를 번갈아 본다. 꼬마는 고모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으로 익히 나를 알고 삼촌같이 반겼다.
나무막대를 옆구리에 차고 손바닥만 한 마당에서 아무도 없는 빈 벽에다 대고 오른손을 굽혀 큰절하면서 ‘아뢰오.’를 의젓하게 외치면서 장수의 흉내를 곧잘 내는 꼬마는 평양에서 유치원을 다니다가 왔는지, 하는 짓 모두가 예사롭질 않았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 되면 한창 짓이 나서 껑충거린다. 한마당 잠시, 내가 구색을 갖추어 상감마마가 돼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어쩔 줄 모르게 기쁘다.
턱이 갸름하고 이마는 넓어서 귀공자 같고, 머리카락이 보드라워서 깃털 같고, 망울이 구르는 소리가 들릴 듯이 초롱초롱한 눈은 시원스레 크다. 희고 갸름한 윤곽의 얼굴은 어디 가도 시골 애 같질 않아서 귀염을 독차지할 것 같은, 이 꼬마는 어머니를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형편이란다.
이 이야기는 몇 해 전에 고모님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어른들끼리 나누시는 말씀을 내가 엿들은 적이 있어서 어렴풋이 안다. 이 꼬마는 어머니와 생이별인지 사별인지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점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꼬마는 천진하고 발랄하다.
고모님은 제게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지만, 눈치로 보아서는 이 꼬마를 당신 슬하에 두고 의지하고 여생을 보내시려고 작정하셨나 보다. 모든 여건이 그렇게 조성되어서 무르익어 가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지역적인 여건이나 경제적 능력으로 보아서 이곳 시골에서는 학업을 마칠 수 없으니 모름지기 고모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 꼬마는 이곳에서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그런 재주 덩어리 꼬마인 것을 내가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때 가서는 고모님의 외로움은 다시 시작될 것이란 방정맞은 미리 짐작도 해보았든, 그런 꼬마다.
고모님의 걸음 폭이 넓어졌고 활개는 날이 다르게 힘졌다. 그럴 만도 하다. 고모님이 모시고 계시는 시어머니, 안사돈할머니는 고모님의 어두운 얼굴을 하루 같이 대해야 하는 고통을 면할 수 있어서 기쁘셨고, 고모님은 또 시어머님의 밝은 모습에 더더욱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이 모두에서 그때에는 어림도 할 수 없는 내 소견이었지만 이제 생각해 보면 꼬마는 고모님께는 하늘의 선물이었다. 고모님은 성정으로 보아서나 행실로 보아서나 열녀임을 고을이 보증하는 터였으니 마땅히 이 꼬마를 안아 보는 보상을 받아야 할 것이란 생각도 아울러 해본다.
꼬마의 노는 짓이 우리가 어릴 때 놀든 짓과 너무나 다르다. 새 세상에서 보고들은 배움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해맑다. 나는 내가 이만큼 클 때까지 감싸 안았든 해방 전의 허울은 흔적조차 없어진 지난 세월에 대해서 허무함도 함께 느꼈다. 그때의 내 작은 시샘이 시대를 탄 꼬마의 행운을 부러워했음이 부끄럽다.
‘난세의 인물’이 꼬마에게 이루었기를 바라면서 이미 육십을 바라볼 그 꼬마의 생사를 몰라, 못내 아쉽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