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외통프리즘 2008. 6. 1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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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1593.001113 우물

사라져가는 우물과 샘을 되살리는 복고의 삶은 불가능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니 답답하고 우울하다.

 

요새 눈만 뜨면 환경이요 오염이요, 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샘과 우물을 사용할 수 없는 것과 관련이 있고 이 우물과 샘이 되살아 날 때 비로써 환경문제도 매듭지어지리라고 생각한다.

 

샘 밑바닥의 샘구멍에서는 모래알이 춤추고 흐르는 물결에 풀잎이 방아고처럼 춤추면 그것이 바로 천연적인 것이리라.

 

이에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모래가 치워지고 가장자리가 말끔해지기는 하지만 이미 샘의 정취가 사라지며 샘물만 남는 인공 샘이 되는 것이다.

 

샘은 온갖 생물의 쉼터가 될 뿐만 아니라 생명의 원천이다. 샘, 그 자체는 샘물의 끝이지만 생명의 샘은 바로 그 자리가 시작인 셈이다. 그리하여 샘은 샘 본연의 일을 다 하면서 새로운 샘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우리가 사는 이세상의 가장 보배로운 것이다.

 

용솟음치는 샘은 힘이 있다. 대지의 맥박을 이었기 때문이다.

용솟음치는 샘은 막을 수 없다. 그가 끌어안은 바탕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샘은 아무리 흐려놓아도 흐려지지 않는다. 샘의 생성과정이 맑기 때문이다.

 

샘은 마르지 않는다. 샘이 마를 수 없는 것은 산을 품고 대지를 안아서 그 위에 매친 이슬과 그 위에 내린 서리 가 알알이 스며서 잎을 구르고 줄기를 타서 흙으로 거르고 바위로 데워서, 땅위의 모든 것과 땅속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핥고 훑어서 모아들인 것이니 정녕 힘 있고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 오래된 샘이 두 곳에 있는데 한 곳은 동네 가에 있으면서 무논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

 

이곳에 오래된 향나무가 샘의 시작을 알리듯이, 뿌리깊이 샘에 박아 샘을 지키고 있다.

 

밑둥치가 아름을 넘기도록 굵지만 속이 비어 가는 오래된 나무다.

 

내가 모르는 세월을 작은 이파리에 매달아서 샘터에 오는 마을 모든 이에게 물어보듯이, 내 살을 깎아서 집집의 조상님의 제사 향으로 올려 세월을 물어보듯이, 그도 모를 우물의 역사는  그 향나무와 더불어 그렇게 시작 됐다.

 

향나무는 우리 동네의 시작이고 우리 동네와 함께 있어 만남의 자리가 되어서 우리 동네의 모든 비밀을 간직 한 채 서서, 용솟음쳐 조용히 흐르는 샘을 지켜보고 있다.

 

 

또 한곳은 아래 마을의 과수원 옆 샘인데, 솟는 샘물의 양이 어찌나 많은지, 겨울철의 샘물이 어찌나 따스한지, 동네의 겨울철 빨래터가 되고 있다. 미나리 깡이 저 아래쪽에 있고 오리와 물고기가 함께 노닐 만큼 넓게 흐르는 못이 생겨서, 겨울은 얼지 않고 여름은 발을 못 넣도록 찬 냉 천수가 돼서, 동네의 김칫독이 이리로 모이는, 우리 동네 공동의 천연 냉장고다.

 

샘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의 수가 늘어감에 따라 샘물이 딸리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우물이 생기게 되었을 것이다.

 

인공구축물인 우물이 우리네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은 그 우물이 용수(用水)의 구실뿐만 아니라 아낙들의 유일한 정보 매개수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새댁이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귀 거슬러서 물 가득한 물동이의 물을 퍼서 허드레 물독에 심통 채 비우고서 한 손에 물 단지 들고 한 손엔 똬리를 들었다. 똬리의 구멍에 넣은 손가락 네 개가 옹 차게 움켜쥐어 행주치마를 불나게 들썩이며 우물가로 촘촘히 걸어 나오는 며느리,

 

며느리의 꾸물거림에 치미는 울화를 삭힐 길 없어서 함지박 들고 마당에 나와서는 텃밭에 들러서 푸성귀 솎기는커녕 잡히는 대로 뽑아서 시위라도 하듯이 부엌에 내동댕이치고는 치마 바람으로 풍구질하고서 휑하니 돌아 나와 함지박 던지는 시어머니를 향해서 눈 흘기는 곳, 이런 우물가에서 마을의 안방소식과 길 흉 대소사의 뒷이야기가 치마에 실리고 바람을 타며 마을 구석구석에 퍼지는, 우물은 살아서 숨 쉬는 샘의 후손이다.

 

그러나 우물은 샘과 같지 않아서 잠잠하다. 우물은 국지적이기 때문이 다.

우물은 넘치지 않는다. 사람이 팠기 때문이다.

우물은 자주 처 주어야 된다. 솟아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물은 때때로 마른다. 하늘을 이고 산을 안고 대지를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 곳을 나다니는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 들일 양, 아버지는 이웃의 도움으로 우리마당에 작은 우물을 팠다. 이 우물로 내 뼈가 굵었고 이 우물로 해서 내 키가 자랐고 이 우물로 해서 내피가 맑아졌다.

 

우물이 복원되는 날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질 테고 마침내 샘이 복원되는 날 우리의 실낙원은 이룩될 것이다. /외통-

아름답게 되기는 쉬워도, 아름답게 보여 지기는 어렵다(F.오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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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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