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배

외통프리즘 2008. 6. 1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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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6.001029 정어리 배

갑자기 집안이 뒤숭숭해지더니 어른들이 들락거리면서 찬바람을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디론지 나가셨고 할머니와 우리 조무래기만 남았다. 잠결에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말고 들리다가 말곤 했다. 그렇게 들리던 소리에 갑자기 외마디 큰소리가 더해 들렸다. 눈이 번쩍 뜨였다.

아버지가 업혀서 들어오신다는 소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들은 저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는 우리를 달래랴, 당신의 아들 안위를 걱정하시랴 굳은 표정으로, 이번에는 아예 문을 열어놓고 들락거리신다.

잠시 후 또 다른 소식은 아버지께서 어느 집 사랑방 뜨거운 방에서 몸을 녹이고 계신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우리 모두를 한 이불로 감싸시고 긴 한숨을 뿜었다. 그 한숨은 어느새 우리 얼굴을 따스하게 녹이고 있었다.

이미 다 건져 간 뒤에 소문을 들은 몇몇 동네 분이 삼태기와 마대를 준비하고 가시는데, 아버지는 흥분한 나머지 오히려 부실하게 차리고 나가신 것이다.

처음은 파도에 밀려 모래 위에 걸쳐진, 지천으로 널려있는 정어리를 그저 퍼 담다시피 했는데, 차츰 그 수가 줄면서 파도에 밀려드는 정어리들을 기다리며 주어 넣거나 밀려드는 파도에 삼태기를 드리워서 건져내는 지경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한발 뒤늦은 동네 분들 틈에서 건져내는 쪽이셨다. 그러다 보니 물속으로 한발씩 들어가게 됐고 차츰 깊이를 더하여 급기야는 모두가, 내남없이 물속에 들게 되고, 얼마나 멀리 얼마나 깊이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어획(?)량이 결정되고, 이 풍성한 정어리 떼의 임자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주인이 달라지는, 바다는 그야말로 능력 본위 현장화 실험장이 됐다.

바닷가엔 모닥불이 피워지고 잠시 잠시 몸을 녹이고는 다시 들어가곤 하는 밤샘이 계속됐다. 그러나 아버지는 행장도 부실하려니와 무리가 되셨던 것 같다. 체력이 달린 아버지는 그나마 요행으로 돌아오셨다.    

바닷물 밑은 온통 정어리가 지천으로 깔려있고 더러는 물 위에 떠서 해류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씩 밀려가는 것을 누구도 알 수는 없었다.

일부의 동네 어른들은 가까운 바닷가 어촌에 가서 ‘전마선’이라는 무동력 멍텅구리 배를 빌려서 타고 바다의 보물을 건지러 나갔다. 그 배를 탄 많은 동네 어른은 자기 위치는 전혀 모르는 칠흑 밤에 삼태기의 촉감만 만끽하며 별을 보고 환호했다.

동이 틀 무렵에야 그들은 자기들의 배가 닻도 없고 돛도 없는 멍텅구리 배임을 자각했고, 육지를 아무리 보아도 자기들이 사는 곳은 아니고 어딘지 모르는, 낯선 바다 한가운데에서 아침 해를 맞았다.

모름지기 생정어리는 그들의 좋은 영양 보급 수단은 됐을 것이고 생명을 보존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뉘 집 아들, 뉘 집주인, 뉘 집 조카, 뉘 집 손자, 실종 신고자가 수두룩하고, '주재소(파출소)'와 '면소'는 있는 수단이 모두 동원됐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들이 '장전항' 먼 앞바다까지 떠내려가서 다른 정어리 배에 구조된 것은 요행이고 동네의 새로운 경사로까지 이어졌다.  


짐작할 뿐인 정어리 떼, 그 내용은 이렇다.

별 하나 없는 그믐날의 한밤중, 만선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전속력으로 먼 곳의 반짝이는 불빛들을 향해서 파도를 가르는 정어리 배다.

예나 다름없이 어머니의 품 같이 안아 들이듯 손짓하고 있는 항구의 불빛이 보였다.

외로운 등대는 진로를 정확하게 일러주고 있다. 정어리 배의 뒤에 이어 달은 두 척의 ‘멍텅구리 배’에도 정어리는 넘치도록 실려있다.

이들 어부는 그리운 가족의 꿈을 꾸고 있었다. 오직 조타실의 선장만이 조는 듯 홀로 서서 먼 불빛을 응시하고 속도를 더해갔다.

아니 웬!!. 배는 바닷가 모래 위에 얹혀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때야 선원 모두는 이 배가 좌초 아닌 모래가 깔린 해변에 들어 얹히고 더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대책을 논의했으리라.

항구가 아니니 통신수단은 물론이려니와 사람을 불러서 어디론가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등대를 쫓아갔으나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등대가 아니라 마을에서 오리나 떨어진 바닷가의 외딴집의 등불임을 알았고 그제야 그들은 등대지기의 비상 연락 희망도 포기했다.

바닷길을 휘젓고, 바다 밑을 꿰뚫는 그들 뱃사람의 체면에 이토록 치욕의 현장이 된 적은 없었으리라.

기상 조건이 아무리 나쁘다지만 항구도시의 불빛과 각종 관(官)서가 있는 면 소재지의 바닷가의 외딴집 불빛을 분간 못 한 선장의 수치심, 어부들의 비협조, 불빛 무리한테서 멀리 떨어져서 바다 한가운데 나와 있는 것처럼 보인 독립가옥, 외딴집의 등대 불같은 외 등불 빛, 등댓불과 농가 전등을 구분 못 한 선장의 심경은 복잡했다 어떻게든 빨리 이 순간을 모면하고 싶은 것이었다.

선원들은 애써서 잡은 정어리를 미련 없이, 있는 힘을 다해서 퍼서 바다로 내던졌다.

선창 바닥이 드러나고서야 배를 뒤로 움직일 수 있었다. 이 밤이 가기 전에 바다 한가운데로 다시 나가 새로 시작하자.

올바른 판단이었다. 그래야만 명예가 회복될 일이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단 한 번의 우화(寓話) 같은 이 일로 해서 많은 교훈을 얻는다. 선장의 자만과 오기며, 집단에서 이탈하여 홀로 두각에 서고자 하는 영웅심, 협동을 외면한 선원의 나태, 이 모두 우리 일상인 것이다.

반세기가 훨씬 지났다. 아니다. 정확히 육십이 년 전의 일이다.

내 배의 정어리 떼를 퍼서 세상의 바다에 버려야 할 텐데 나는 머뭇거리고 있다. 선장과 선원들은 늦게나마 그들의 할 일을 자각하고 행동했다. 그들 선장과 선원의 결단이 부럽다. /외통-

1566.001029 정어리 배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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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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