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민주’의 이름으로 못 하는 일이 없었던 시절, 민주는 개혁의 수단이자 방편으로 충분히 작용했다. 우리 학생에게는 한층 더 민주시민 훈련으로 다져 나갔다. 그래서 이론상의 민주주의는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익혔지만, 그 사회의 흐르는 기류를 막을 수는 없었다. 다만 그 기류 속에서 어떻게 타고 어디쯤에서 다시 뒤쫓아 오는 다른 기류를 타느냐는 것뿐이었다.
이미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정해진 터널 안에서 활동해야 하고 움직여야 하는, 폭은 좁고 길이는 짧은 민주주의 훈련이었다.
이름하여 ‘민주소년단’, 회의한다고 치자. 그러면 시간과 장소와 주제까지를 구성된 단원들이 마련하고 추진해야 하련만 그렇지 못하다. 제약된 장소와 시간으로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이것까지를 망라해서 총의(總意)에 의해서 실행함이 마땅하다.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하더라도 주제만이라도 이루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입을 통해서 총회에서 정함이 옳을 것이련만, 이 역시 그렇지 않았다.
만약 그 회의장에서 마련하는 것이 시간상으로 불가능할 때는 몇몇 중심적 인물이 사전에 숙의(熟議)하여 정한 다음 총회에서 추인받으면 될 것인데, 이것도 안 되는 것 같다.
겨우 막후에서 정한 제반사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인 절차를 걸쳐서 시행함으로써 만연하는 민주의 이름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속셈인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회자가 임시의장이 돼서 의장을 뽑고 의장은 회의의 진행 상황을 기록할 서기를 구두로 호천(呼薦) 받아서 뽑고 감표(監票)위원을 뽑은 다음 그 조직의 근간이 되는 헌장이든지, 정관이든지, 회칙이든지를 민주적 절차에 따라서 채택하고 그 규정에 따라서 조직의 상설기구를 구성하는 상임 위원과 기타 등등을 선출하는 과정을 갖추어야 하지만 그렇질 못하다.
이미 다 정해진 틀에 쫓아서 단순히 의결 절차만을 민주의 형식을 빌렸을 뿐이다. 그래서 일직부터 터득한 이 절차상의 민주주의 훈련은 통과의례로 전락하고 만다. 이만한 훈련을 쌓는 것도 ‘일정(日政)’ 때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서 처음 국회의원 격인 ‘대의원’ 선거의 홍보를 하는 것을 눈여겨볼 수 있었다. 해방 후 북에서다. 단일입후보에 찬반 투표만을 시행하는 것도 민주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민주 선거의 방법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의 선거 방법을 전혀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백색의 투표함과 흑색의 투표함을 함께 나란히 붙여놓고 있다, 투표용지를 받아 든 다음, 단일후보인 까닭에 기표라는 절차가 생략되고 바로 투표함으로 직행하고 흑․백의 투표함에 각각 한 번씩 손을 집어넣음으로써 투표의 모든 절차가 완료된다.
이때 언제나 진행 방향에서 우선하여 백색의 함이 놓여있고 그다음으로 검은 통이 놓여있는데 이 두 통에 반드시 한 번씩 손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이 잘 먹혀들질 않았고 실제로 투표하는 과정에서도 필요한 곳, 그러니까 진행 방향에서 우선한 투표함에 넣고 그냥 나가버리는, 이 선거를 기획하는 견해에서는 지극히 난감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제일 두려워하면서도 민주적 절차를 원용하는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당국은 이 점의 우려를 가장 많이 했다.
이점을 홍보하기 위해서 모의 투표도 여러 번 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아마도 두 상자를 나란히 붙여놓되 두 상자의 투표구가 보이지 않도록 손목 높이만큼은 앞을 가려서 잇달아 들어오는 다른 투표자나 외부에서, 마치 두 투표함에 넣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그러래서 손이 안보이니 투표용지가 찬성 투표함인 백색 투표함에 한 번 들어가고 반대투표함인 흑색 투표함에 한 번 들어가게 하는 것을 외관상 확인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그런 절차에서 감히 누가 백 투표함에 넣지 않고 그대로 흉내만 내고 투표용지를 반대함인 흑 함까지 가지고 가겠는가. 생각해 보면 아무리 해도 촌로(村老)의 투표 거동은 어설프게 돼서 찬성표의 함에만 손이 가고 반대표 투표함에는 의식적으로 피하는, 보는 이나 당국자나 피차가 곤혹스러운 사례를 간단없이 겪어야 하는, 자기모순을 갖게 돼 있는 것이 또한 이 우스운 투표제도이다.
아무튼 투표라는 절차를 거쳤으니,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의원’이고 대표기관을 구성하는 의원이 된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그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정서상 걸맞지 않았고 주제에 넘는 것이기에 외면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어른들은 그렇고.
그래도 우리 반에서 시행하는 소년단의 임원 선거는 투표라는 비밀의 형식을 빌질 않고 호천(呼薦)과 찬반 거수로써 정하니 나라의 대표기관을 만드는 ‘대의원’을 뽑는 절차보다는 훨씬 민주적이었다는 것을 이즈음 알아차리게 됐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를 배우는 시간이 무려 오십 년의 세월은 흘렀다. 하나, 본산인 미국의 제도나 우리나라의 제도나 다 같이 두고두고 보완 수정돼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해볼 때가 한두 번 아니다.
기성세대의 혼탁한 선거 양상을 보면서 차라리 옛날 우리 반의 소년단 임원 선거를 표본으로 하면 백 번 더 낳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민주란 좋기도 하고 쓰레기 같기도 해서 버릴 수도, 온 세상 사람들의 이상이니 외면할 수도 없는 고질인 것 같다.
그것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많은 독재자가 민주의 이름으로 권력을 잡았고 민주의 이름으로 탄압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때마다 그 사회에 참여했든 사람들도 한결 민주를 앞세워 그들을 키우고 감쌌으니, 이것이 학자들이 말하는 군중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마술의 차원으로 보아 마땅하기에 민주는 인류가 해결해야 할 영원한 과제인 것 같다.
민주가 없었던 시대가 인류의 역사를 거의 다 이끌었으니 그 시대의 사람들은 정녕 불행했을까? 한때나마 마취된 사람 모양 길길이 날뛰는 전제 군주 하에서 더 행복했을까를 생각해 보며, 이즈음 민주의 이름으로 모여드는 꾼들의 양태(樣態)는 그들끼리의 경합이 더 적게 피 보는 한 수단으로서만 가치를 높이고 싶을 뿐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