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새벽 미사 길, 지남철에 이끌리는 쇠붙이 같다.
아내의 흔적을 지울 수 없어서다. 고향 집을 떠난 후 나의 잃어버린 과거의 흔적을 몸부림치며 찾던 기나긴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심정의 일각일 수도 있다.
이 나름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다른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며칠 전에 큰 처형이 집에 들렀을 때 내가 사는 방식을 보고 무척 놀라는 데 대한 내 이유 찾기에서 비롯한다.
나는 한 가지도 버리지 못했다. 아내의 옷가지만을 남의 손을 빌려서, 그분들이 적당히 처리했을 뿐이다. 이렇게 움켜쥐고 산다는 것은 그것들을 버리기 시작하면 내가 딛고 있는 땅과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자연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있는 이것들은 먼저 간 사람과 함께 했던 것들이고 또 그의 발자취를 그려주는 모두다. 해서 나는 내가 사라지는 날까지 이 대로 보존하고 그의 냄새를 맡고 그의 자취를 더듬고, 그의 생각을 되뇌고, 그의 노래를 음미하고 감상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내 고향의 흔적을 앙갚음의 하나로, 또 아내를 그리는 한풀이 삶의 다른 하나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난 아내와 함께 미사에 참례하러 간다. 아내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