괸돌

외통궤적 2008. 12. 2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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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76.040726 괸 돌

가슴이 조이는 짧은 말 한마디, ‘괸돌!’

아득한 옛 조상들이 시간을 당겨서 다가오는 그 소리! ‘괸돌!’ 고인돌의 준말 ‘괸돌’이 정겹다. 내 조상의 셀 수 없는 긴 날의 삶을 담아 들려주는 살아있는 소리 ‘괸돌’이다. 가까이 와닿는 이 돌, 듣기만 하여도 설레는 우리 집 가호(家號)인 ‘괸돌집’.

바로 고인돌의 주인인 우리 조상을 만남이 즐겁고, 마음 또한 흐뭇하다. 그것은 내가 ‘괸돌집’ 자손이란 명백한 사실에서 얻는 흥분이고 기쁨임을 숨길 수 없다. 그렇지만 가호(家號)인 ‘괸돌’만으로는 조상에 대한 나의 애타는 목, 추길 수가 없다.

어렸을 적엔 ‘괸돌집’이라는 우리 집 ‘가호’가 무척 나를 속상하게 한, 한때도 있었다. 그때에는 너무 촌스럽고 창피해서 입에 담질 않았던 그 '괸돌집'이 이제는 그리움의 ‘돌’과 고향이 되었으니 어이 하랴! 어린 마음에도 괸 돌이란 ‘괸’ 자가 지극히 토속적이고 순순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다른 집 가호는 대개 자주 듣는 동네 이름이거나, 처음 들어도 그 발음과 어감이 어색하지 않아서 편안했던 반면, 우리 집 가호만은 잘 알아들을 수 없게 괴이했다. 자주 듣는 말도 아니어서 원시적 사투리일 것이라는, 미개한 사람들의 어떤 감정 표현일 것이라는, 그런 생각조차 들었다. 그리고 우리 집이 아주 먼 곳,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곳과 관련된 집안이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더욱 숨기려 했었다.

그러던 내가 이렇게 내놓고 떳떳이 부를 수 있는 데는 그만한 연유가 있으니 바로, 살아온 과정에서 녹은 내 실재(實在)의 의미를 ‘괸돌’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에 싸이고, ‘괸’ 자에 정감이 들면서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서슴없이 우리 집 가호를 입에 담고 산다. 주문을 외듯 ‘괸돌’을 외면서 선조의 터전을 상상하는가 하면 그 뿌리를 찾아 새기는 삶의 외마디 환호도 지른다. 그래서 또한 만족하고 있다.

필시, 내 뿌리도 이 ‘괸돌’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무릎을 쳤다. 스스로 놀라운 발견이라도 한 양 그쪽으로 관심, 훑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고향의 집 가호(家號)이니 고향과 그 언저리에서만이 먹힐 것이기에, 생각에 머문다.

그러다 마니, 안타깝다.

내 이 나이에 일찍이 자라던 옛 고향의 그분들을 그때 모습 그대로 만날 수는 없겠고, 그 후손들을 만나서 내 모든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길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 또한 내 고향이 밟아 볼 수 없는 미수복 지구에 있으니 이룰 수 없어 아쉬움만 더한다. 이토록 내 능력 밖에 있을 뿐이다.

그 지경이 되면 차라리 모든 걸 바로 풀어서 내 뿌리를 이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괸돌집’의 몽상은 아득한 옛날 선사시대의 돌무덤으로 환원되는 허공의 바람이 된다. 또 꿈으로 끝난다. 그래서 또 부질없는 생각이다.

그러나 발버둥 친 자국만이라고 남겨보리라!

함경도 고원의 일가 한 분이 우리 이천 ‘서씨 종보(宗報)’에 기고한 바에 의하면 자기가 살던 고향에 ‘괸돌’이 많이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글을 보고 내 눈이 번쩍 뜨였다.

혹시 거기 어디에서 우리 집안의 어느 할머니가 시집오심으로부터 가호가 ‘괸돌집’으로 불린 게 아닐까?

아니면 거기 어디에서 갈라져 온 조상은 아닐까? 괸 돌이 있는 언저리의 마을에서 옮겨옴으로써 괸 돌집이 된 뿌리일 수도 있겠다. 싶어, 우리 집이 ‘괸돌’ 집으로 된 것이리라고 믿고 싶었다.

가늠할 수 없어서 또 서초동에 있는 도서관을 들락거렸고, 여러 날을 족보 책 무더기와 씨름을 했지만 역시 여러 날의 내 노력은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다른데? ‘괸돌’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가 없다.

족보는 못 찾더라도 집 가호의 내력이라도 찾고 싶기 때문이다. 혹 전라도에 있는 고흥인가 고창인가 하는데 ‘괸 돌’이 많다는데, 그쪽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 그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도서관의 문턱만 닳게 했을 뿐이다.

아쉬운 내 영혼의 여행이었다. 어느 할머니의 친정이 ‘괸돌’ 마을인가?

어느 할아버지의 괴나리봇짐 진자리가 ‘괸돌’ 마을인가?

할아버지는 어떤 연유로 내가 태어난 곳에 봇짐을 풀었을까?

그 ‘괸 돌’ 할머니는 언제 어떻게 내 몇 대조 할아버지에게 시집왔을까?

나는 왜 ‘괸 돌’ 집 손자로 이름 지어서만 온 동네에서 알아볼 수 있었을까?

나는 왜 유별난 집 가호를 지닌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 그 유래를 모를까?

답답하다. 아득한 옛날부터 터 잡고 살아온 뿌리박힌 집인데 어쩌다가 나는 뿌리를 놓쳤나! 어려서 집 나왔어도.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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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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