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조이는 짧은 말 한마디, 괸돌! 아득한 옛 조상들이 시간을 당겨서 다가오는 그 소리! ‘괸돌!’ 고인돌의 준말 ‘괸돌’이 정겹다.
내 조상의 헬 수없는 긴 날의 삶을 담아 들려주는 살아있는 소리 ‘괸돌’이다. 가까이 와 닿는 이 돌, 듣기만 하여도 설레는 우리 집 가호(家號)인 ‘괸돌’. 바로 고인돌의 주인인 우리 조상을 만나는 내 마음이 즐겁고 흐뭇하다.
그것은 내가 ‘괸돌집’ 자손이란 명백한 사실에서 얻는 흥분이고 기쁨임을 숨길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집 가호인 ‘괸 돌’만으로는 조상에 대한 나의 타는 목을 추길만한 길이 없다.
어렸을 적엔 ‘괸돌집’이라는 우리 집 ‘가호’가 무척 나를 속상하게 한, 한 때도 있었다. 그때에는 너무 촌스럽고 창피해서 입에 담질 않았던 그 '괸돌집'이 이제는 그리움의 ‘돌’과 고향이 되었으니 어이 하랴! 어린 마음에도 괸돌이란 ‘괸’자가 지극히 토속적이고 순순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다른 집 가호는 대개 자주 듣는 동네이름이고 혹 처음 들어도 그 발음이 어색하지 않아서 편안했던 반면에 우리 집 가호만은 잘 알아들을 수 없게 괴이하다. 자주 듣는 말도 아니어서 원시적 사투리일 것이라는, 미개한 사람들의 어떤 감정 표현일 것이라는, 그런 생각조차 들었다. 그리고 우리 집이 아주 먼 곳,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곳과 관련된 집안이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더욱 숨기려 했었다.
그러던 내가 이렇게 떳떳이 내뱉을 수 있는 데는 그만한 연유가 있으니 바로, 살아온 과정에서 녹은 내 실재(實在)의 의미가 녹은 ‘괸돌’의 의미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에 싸이며, ‘괸’ 자에 정감이 들면서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서슴없이 우리 집 가호를 입에 담고 산다. 주문을 외듯 ‘괸돌’을 외면서 선조의 터전을 상상하는가 하면 그 뿌리를 찾아 새기는 삶의 외마디 환호도 지른다. 그래서 또한 만족하고 있다.
필시 내 뿌리도 이 ‘괸돌’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무릎을 쳤다. 스스로 놀라운 발견이라도 한 양 그 쪽으로 관심을 갖고 훑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고향의 집 가호(家號)니 고향과 그 언저리에서만이 먹혀 들 것이기에 생각에 머물고, 그러다 마니 안타깝다. 내 이 나이에 일찍이 자라던 옛 고향의 그 분들을 그 때의 모습 그대로 만날 수는 없겠고, 그 후손들을 만나서 내 모든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길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 또한 내 고향이 밟아 볼 수 없는 미 수복지구에 있으니 이룰 수 없어서 아쉬움만 더한다.
그것은 내 능력 밖에 있을뿐더러 그 지경이 될 것 같으면 차라리 모든 것을 바로 풀어서 내 뿌리를 이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괸돌집’의 몽상은 아득한 옛날 선사시대의 돌무덤으로 환원되는 허공의 바람이 된다. 또 꿈으로 끝난다. 그래서 또 부질없는 생각이다.
허나 발버둥친 자국은 남으리라!
함경도 고원의 일가 한 분이 우리 이천 ‘서씨종보(宗報)’에 기고한 바에 의하면 자기가 살던 고향에 ‘괸돌’이 많이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글을 보고 내 눈이 번쩍 뜨였다. 혹시 거기 어디에서 우리 집안의 어느 할머니가 시집을 와서 우리 집 가호가 ‘괸돌집’으로 불리어진 것은 아닐까? 아니면 거기 어디에서 갈라져 온 조상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그 이전에 우리 집안은 내 고향에 이미 자리 잡고 살았었는데 그 후에 ‘괸돌’이 있는 마을에서 우리집안의 어느 할머니가 시집을 오셨기 때문에 우리 집이 ‘괸돌’ 집으로 된 것이리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또 서초동에 있는 도서관을 들락거렸고 여러 날을 족보 책 무더기와 씨름을 했지만 역시 여러 날의 내 노력은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다른데? ‘괸돌’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가 없다. 족보는 못 찾더라도 집 가호의 내력이라도 찾고 싶기 때문이다. 혹 전라도에 있는 고흥인가 고창인가 하는데 ‘괸 돌’이 많다는데, 그 쪽과 유래가 있을 것 같아서 그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도서관의 문턱만 닳렸을 뿐이다.
아쉬운 내 영혼의 여행이었다.
어느 할머니의 친정이 ‘괸돌’ 마을인가? / 어느 할아버지의 괴나리봇짐 진자리가 ‘괸돌’ 마을인가? / 할아버지는 어떤 연유로 내가 태어난 곳에 봇짐을 풀었을까? / 그 ‘괸돌’ 할머니는 어찌해서 우리 할아버지에게 ‘괸돌’에서 시집을 왔을까? / 나는 왜 ‘괸돌’집 손자로 이름 지어서만 온 동네에서 알아 볼 수 있었을까? / 나는 왜 유별난 집 가호를 지닌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 그 유래를 모를까? 답답하다.
아득한 옛날부터 터 잡고 살아온 뿌리박힌 집인데 어쩌다가 나는 뿌리를 놓쳤나! 어려서 집 나왔어도.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