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울한지! 어쩐지 잔뜩 흐려서 곧 비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 마음, 가눌 수 없는 마음, 늘 개여서 산들바람까지 불던 내 마음의 일기가 몹시 낮아진 기압으로 짓눌려 있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노후를 바라보는 이웃 동료들의 쓴소리가 마음을 거스르는 것이다. 나하고 전혀 무관하거나 내 처지와 상관없는 일일 것 같으면 아무리 듣기 싫은 소리도 담담하게 내게 와 닿아야 하련만 그렇지 못하니 아마도 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와 관련지어진, 나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에 드리워지는 말 그림자인 것 같다.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전혀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말 같기도 한 그 말, 내 처신에 그들은 의아해하면서 맞서는 그 말, 바른말이라면서 그 길을 일러준다는, 그 말이 도무지 내 입지하고는 걸맞지 않다.
그들은 나를 통상적인, 보통의 환경에서 살아온, 그런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 대한다. 그들이 입지에서, 그들의 판단 잣대로 나를 재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구름은 통 걷히지 않는다. 그들은 온 가족이 이 땅에 살고, 가족이란 공기의 흐름 속에서 숨 쉬고 이어 살다 보니 이즈음 흔해 빠진 자식과의 관계를 단칼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가계 구조를 내세우고 나를 그 틀 속으로 몰아넣으려 한다.
그들은 내 심신 상태와 내 입지를 헤아릴 수 있는 정서가 없다. 어쩌면 동그랗게 다듬어진 전통적 삶에 식상, 그 낡은 껍질을 벗기고 튀어나오고 싶었는데, 눈으로 확인되는 내 생활 태도가 그들의 마음을 오히려 거스르는 것이다. 그들의 입지에다 나를 몰아세우고 싶을 뿐이다. 난 그들과는 다른, 태생(胎生)적 과거가 있고 그들과는 전혀 다를 궤도를 가는 것이다. 이 궤도를 그들은 함께 할 수 없었고, 그러니 앞으로도 그 궤도를 따라갈 수 없음을 알지 못한다.
이 사회에 내디딘 출발부터가 다르고 그때의 다짐부터가 다르다. 내가 그들처럼 내 사생활을 앞세워 가정 구성원과 반목 진다면 난 이제까지의 발자취를 깡그리 지워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나는 내가 갈 궤도가 따로 있는 것이다. 그 궤도는 다름이 아닌 내 존재를 영원히 남기는 것이다. 그러려면 나를 희생함으로만이 가능함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만약 그들과 같이 내 대에서 내 위주로 살다 간다면, 내가 이 땅에 발 디딜 때의 다짐과 내 행적은 서로 엇물려서 상쇄되어 말소되고 마는, 이 비극적 현실을 그들은 알 까닭이 없다.
연어의 삶을 살고 싶은 나와 위험에 처해서 제 자식을 잡아먹는 어떤 야생의 삶은 지극히 대조되는 것이면서도 두 경우 다 자식 사랑의 한 단면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연어의 삶을 살고자 하는 내 처신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야생 동물 세계에서 이런 자기희생의 모성, 부성을 따르려는 특수 족도 있다는 것을 남다르게 보여주고 싶은 심경이다. 바라건대 특별한 삶을 사는 내게 가소로운 또 다른 흥미 거리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그들과 견주어 볼 수 없는 무엇이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바뀌어서 내게 대한 한낱 작은 부러움이 싹트길 바랄 뿐이다.
난 점점 내 처신의 합리성을 찾기 시작한다. 그렇다. 내가 이제 내 안위를 위해서 내 주장대로 처신한다고 해서 행여 애들이 이설을 입에 담지는 않을 것이지만, 내 마음속 한구석에 검은 점이 자리 잡아서 영영 이제까지 지우지 못하고 있는 내 할아버지에 대한 인상처럼, 나 또한 애들에게 그와 같은 인상을 심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내가 잘못하면 애들 마음은 검게 물들 것이다. 검게 물들어서 지워지지 않는 응어리진 검은 점 말이다.
내가 사는 이 시간은 오직 내 대를, 내가 이어갈 몫을 다함으로써 나를 있게 한 내 부모에 대한 도리, 선조에 대한 도리, 창조주에 대한 도리를 다함을 그들에게 당당히 선언하지 못한 그때 당황하든 나, 답답함을 피력하고 응답하리라.
난 연어의 삶을 살리라고.
난 자식에게 먹히리라고.
그래서 나를 소진하리라고.
끝내는 나를 온전하게 하리라고.
먹구름은 바람에 쓸려갔고, 마음은 파란 하늘로 물들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