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인생 2009. 1. 17. 16:18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덕(德)

9560.040220 덕(德)

처마 끝에 거꾸로 매달린 소나무가 아버지의 마음을 실은 듯 묵직이 크다. 소나무는 대문조차 가리면서 금계(禁界)의 위엄을 담아 잎도 짙푸르다. 이렇게 큰 금계의 표시로 온 동네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기쁨을 전하듯 소나무는 미풍에 흔들리고, 아버지의 열망을 담은 햇빛은 음지를 밀어내어 처마 밑을 파고든다.

우리 집은 음지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상덕(商德)’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담은 이름이다. 이 것은 막내 동생을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내가 덕(德)이란 글자에 매료되며 포근해 짐은 그 글자의 뜻도 뜻이려니와 덕(德)자를 통하여 마침 표를 찍는 아버지의 한 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상덕’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의 은덕을 입지 못하셨으니 내 동생의 이름 글자에 만이라도 덕을 담아 주시어 장차 당신이 떠나신 후에라도 그 덕으로써 못 다한 아버지의 한을 풀려고 하셨을 것이다.

지금 나는 ‘상덕’이 있어서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 같아 흐뭇하셨을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어머니와 할머니와 다른 형제들이 그 덕을 보았을 것 같아 내 마음 기쁘고, 그 이름이 더욱 소중해지면서 머릿속을 맴돈다.

그렇게 되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비록 지나간 일일지라도 나에게는 정지된 영상의 한 장으로 남아서 아직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육십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가슴에 안고 있어서 아직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여기는 처지다. 어쩌면 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덕’인지도 모르니 역설적이다.

내가 집에서 나와 있었으니, 그 동안에 부모님과 형제들의 고난이 고난으로 보이지 않고 꽃밭처럼 화려하게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구렁 속에 묻혀서 허우적거리는 질곡의 날을 보기도 하는, 무한 사유(思惟)의 자유를 누리는 것도 동생 ‘상덕’의 ‘덕’이라면 덕일까?! 무지갯빛으로 물들인 내 인생의 한 끝이 이렇게 아름답게 지워지지 않는 까닭이 ‘덕’을 지닌 동생의 탓이려니 생각하고 있다.

전쟁의 와중에 식구 모두가 유명을 달리했어도 ‘상덕’ 너만은 아직 이승에 남아서 네가 겪은 모든 고통스러웠던 일과, 있을 리야 없었겠지만 즐거웠던 일이 있었다면, 그런 일들을 ‘상덕’ 너의 ‘덕’으로 내가 들을 수 있지 않겠나 싶어서 목을 늘인다.

그래도 네가 식구들 중에 보다 나이 어리니 모르긴 해도 그 덕이 내게 미쳐서, 내가 죽기 전에 너를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내가 네 ‘덕’으로 기운을 차리고 아직 건강하게 살고 있지 않나 싶어서 이 또한 기쁘다.

내 마음이 산란하여 시 공을 마구잡이로 넘나들지만 현실에 돌아오면 답답하게, 생각은 얽힌다. 희망은 부서지고, 냉엄한 현실 앞에서 오열해야 하는 그 날을 피하고 싶은 가느다란 욕심도 함께 파도처럼 일렁이니 이런 심경을 끌어안을 이 누구인고!

그래도 현실에서 너를 만나는 기회가 닥치기를 바라는데, 나는 너‘상덕’의 얼굴을 모르니 어떻게 너를 만난단 말인가! 동생은 더더욱 나를 모를 것이니 아버지의 함자를 묻고 일가의 지난 일을 따지고 족보를 캐면서 조금씩, 조금씩 좁혀 가며 서로를 확인해서 찾아낸다면 혈육은 진하게 끈적여 곧 이어지지 않겠는가!

다만, 내가 그 쪽 세상을 버리고 네가 나를 잊고 지낸 지 육십 년이 되었는데 무엇으로 이야기의 마당을 넓혀 나가겠는가! 우리 둘의 감정을 잇는 데는 더 많은 접촉이 있었어야, 더 넓은 말의 마당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게 식어간다. 이 애달픈 삶을 책임 질 자 누구냐! 동생에게서 ‘덕’을 빼앗아간 자 누구냐! 기가 막히도록 억울한 ‘덕’의 증발이다. 그렇다. 도둑 맞은 ‘덕’을 누가 찾아 주는가! 아무도 없다. 오직 내 마음 속에서 삭이고, 또 곰 삭여서 지난 날을 더듬고 더듬어서, ‘상덕’과 시간을 당기고 공간을 좁혀야 하리라!

말문을 어떻게 열어야 ‘상덕’을 육십 년 전의 나와 마주하게 할 것이며 시간을 줄일 것인지 부옇게 안개만 끼는 내 심사다. 꿈에선들 '덕'을 잊으랴, 육십 년을 뛰어넘을 ‘덕’을 갖고 오려나! ‘상덕’이가! /외통-



'외통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성  (0) 2009.01.19
꿈3  (1) 2009.01.18
과자  (0) 2009.01.15
염려  (0) 2009.01.09
생사  (0) 2009.01.08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