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외통인생 2009. 1. 1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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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8.040213 과자

부둥켜 않고 실컷 울고 싶은 동생, 여섯 살 아래 ‘상찬’의 얼굴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나 오래 전에 그 모습을 보았기에, 너무나 짧은 생활이었기에, 동생은 빛바랬는지도 모른다. 열다섯 살 때까지는 함께 지내면서 한 상에서 밥을 먹었건만 그 많은 날들의 얼굴은 어디가고 지금은 윤곽조차 흐리단 말인가! 내 나이 열일곱 때까지 방학 때만은 꼭 보았을 텐데 어찌하여 생각나지 않는가! 눈을 아무리 깊이 감아 시간을 당겨도 이름 두 자만 또렷할 뿐 모습은 회색으로 부옇기만 하다. 차라리 동생의 얼굴이라며 아무렇게나 그려졌으면 좋겠다.

오죽이나 오래 떨어져 있었으면 모습조차 기억 못할까! 그렇다. 부모님 밑에서 함께 지내면서 호강하던 날들이 아무리 길다 하드래도 내 역경의 날들에 턱없이 못 미쳐서 보이지 않을 것이고, 동생과의 아롱진 놀이동산이 내 심산유곡을 헤매는 질곡의 세월에 비겨 그 크기가 너무나 작아서 묻혔을 터이다. 그래서 동생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 내 매정한 탓으로 한탄 할 수밖에 없으니 차라리 그게 좋으랴만, 그도 마음대로 안 되는, 어쩔 수 없는 미완의 인간. 눈을 감고 가슴을 펴고 아무리 지난 시간을 드려 마셔도 아득히 가물거리는 동생의 모습이다.

가슴만 터질 듯이 죄인다. 나는 동생의 얼굴은 잊었어도 나와 단 둘이만 있었던 숨은 일을 생생히 기억되고, 그로 인해서 동생을 그린다.

지극히 작은 한 토막일지, 세상을 무너뜨릴 엄청난 사건일지, 이 세상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이 일이 아스라이 잊혀져갈 듯 안 잊혀지는, 동생에 대한 죄책감이다.

이 기억은 이날까지 나를 사로잡아 맴돌고 떠나지 않으니 이것이야 말로 영의 결합인 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런 것을 점친다면 대단한 굿거리가 되고 거기서 후련히 속 풀이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싫다. 세상에 나서 이제껏 내 의지대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기 때문이다.

한여름, 참매미 소리가 호박벌을 부르면 텃밭의 싸리 울 위에 걸쳐 뻗은 호박 넝쿨에 무겁게 매달린 호박꽃이 이슬을 털고 꽃술을 내민다. 돌배나무가지 사이에 무리 지어 않았던 참새 떼가 후루룩 날아 뽕나무 사이를 뚫고 어디론가 날아가면 길게 뻗어있던 헛간의 그림자가 한결 밭게 다가 있다.

해가 머리 위에 올라 있다. 지붕 그늘에서 동생과 땅 따먹기를 하는데, 적수가 안 되는 동생은 제 땅을 송두리째 내어 놓는다. 햇볕은 목덜미를 쏘아대고, 흥미를 잃은 동생은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나 또한 심심하다.

햇빛이 눈부시게 쪼여서 마당은 광목을 깔아 놓은 듯 희다. 넓은 봉당(封堂)은 잠시 깜깜했다. 내 옷자락을 잡은 동생을 달래면서 눈을 비볐지만 앞은 여전히 안 보이는데, 매미소리가 나를 붙들어 맨다. “‘상찬’아 우리 매미 잡으러 갈까?” 딱히 매미를 잡을 자신도 없으면서 허튼 소리하는 내게 동생은 바싹 달라붙는다. 헌데 매미는 정확히 남의 집 들 안의 배나무에서 우는데 어쩐담, 하는 수 없이 사탕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마음을 돌렸다.

실랑이를 하는 사이 부엌의 어둠은 사라졌다. 하얀 사기단지 안에서 굳어진 설탕 덩어리 하나를 내어 주었다. 동생의 입은 함박같이 벌어졌다. 어깨를 추기고 흔들면서 봉당 이쪽에서 저쪽을 수 없이 오가더니만 입을 벌리고는 또 설탕을 달란다.

나는 장난기가 동했다. 그래서 가는 소금이 들어있는 검은 단지 뚜껑을 열고 하얀 소금 덩어리 한 개를 내어 주었다. 동생은 받아서 한 입에 넣었고 또다시 어깨춤을 추면서 봉당 끝을 오가더니 갑자기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나를 향해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그 입에서 허연 죽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이다. 울컥 토하고, 또 울컥 토하고, 또 울컥 토했다. 나는어찌 할 바를 몰라서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물을 한 바가지 떠다가 먹였더니 그 길로 동생은 주저앉았다. 어쩔 수 없는, 나 혼자의 수습이다. 식구들은 모두 들 일을 나가시고 누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차가운 봉당 바닥 기를 마시면서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단지 동생이 살아있다는 것만이 감사하고 고마웠다. 동생을 왈칵 끌어안았다. 그리고 울었다. 사물을 분간 못하는 동생에게 말인 듯 무슨 소용이 있으랴! 끌어안고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나만이 간직한 또렷한 기억이다. 그러나 토한 것 말고는 그 뒤에 내가 어떻게 했는지 감감하다. 이 일은 아무도 모른다. 동생도 모를 것이다. 동생은 소금 맛을 모를 나이였으니 그렇고, 내가 입은 다물고 있었으니 영원한 비화다. 모름지기 그 날 나는 하루 종일 동생만을 위해서 헌신 했으리라.

동생에 대한 온갖 것은 잊었어도 아직 그 날의 그 기억만은 생생하다. 동생은 아직 취학 전이었고 나는 아마도 저학년 여름 방학 때였을 테니 나도 ‘천방지축’은 면했을 성 싶은데 그토록 미련한 짓을 해 댔다.

지금은, 오히려 동생에 대한 미련을 간직하게 하는 이 사건은 나로 보아서는 무한한 은혜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던들 동생의 기억은 이름 석 자만 까맣게 박혀 있을 뿐 동생에 대한 내 마음의 문은 열릴 수가 없으리라. 참으로 다행한 한 토막의 추억이다.

이제, 나는 그 때의 잘못을 털고 동생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과자를 사주고 싶지만 동생은 없고, 그 체취조차 맡을 길 없으니 이 허전한 마음을 뉘에게 하소할까! 비록 동생이 희수의 나이가 되었대도 나는 과자를 사서 먹이고 싶다. 그리고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홀로 뛰쳐나왔으니 내 홀로 돌아가야 할 집이건만 나온 지 육십 년이 흐르도록 소식을 모르고 지내는 내 외통수 인생의 궤적이 이제 회귀의 길 마당에서 또 그 그림자만을 그리면서 뇔 뿐이다.

선명하게 그 자국이나마 그려져서 내가 남겨야만 할 삶의 흔적이 되어 동생에게 전해지기만을 바란다. 아울러 휴전선을 넘는 내 궤적을 바라본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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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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