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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긴 한평생
입 한 번 뻥긋 않는다
바람의 보드라운 애무에도
잠잠하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도
낮게 신음 소리를 낼 뿐
재잘재잘 불평하지 않는다
잎새들마다 귀를 쫑긋 세워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제 몸에 담는다 나무여!
발이 없어
그리운 님 지척에 두고서도
찾아가지도 못한다
실바람만 불어도
파란 귀들을 쫑긋 세워
연인의 안부를 궁금해할 뿐
한평생사랑한단 말 한마디
허투루 내뱉지 않는다
가슴속 차곡차곡 쌓이는
그리움이야세월 속에
쉬엄쉬엄 푹 익혀서
슬 푸른 연정(戀情)으로
토하는 저 견고한 붙박이
고독한 사랑의 전사(戰士)여
+ 은행나무
어제는 밝은 햇살 아래
무심한 듯 졸린 듯
잔잔하던 저 푸른 잎새들
오늘은 보슬보슬 봄비 속에
온몸 살랑대고 있네
춤추고 있네
겨우내 참았던 그리움이
꽃비 맞아 불현듯 잠 깨었을까
마음속 가득 짙푸른
그리움 고스란히 드러내고
그 동안의 안부를 묻는 듯
짧은 팔 한껏 뻗어
서로에게 가까이 가려고
안달이 난지척인 듯
머나먼 듯 마주보고
서 있는두 그루 은행나무
+ 나무의 생애
비바람 드센 날이면
온몸 치떨면서도
나지막이 작은 신음소리뿐
생의 아픔과 시련이야
남몰래 제 몸 속에나이테로새기며
칠흑어둠 속이나 희뿌연 가로등 아래에서도
고요히 잠자는 나무
보이지 않는 뿌리 하나
목숨의 중심처럼 지키면 그뿐
세상에 반듯한 집
한 칸 장만하지 못하고서도
햇살과 바람과 이슬의 하늘
은총 철석같이 믿어
수많은 푸른 잎새들의자식을 펑펑 낳는다
제 몸은
비쩍 마르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기른 것들과
늦가을 찬바람에
생이별하면서도
새 생명의 봄을 기약한다
나무는 제가
한세월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알기나 할까
+ 나목(裸木)
봄, 여름, 가을
잎새들 무성한 찬란한 세 계절에는
스치는 바람에도 뒤척이며
몸살을 앓더니
겨울의 문턱에서
그리도 빛나던 잎새들 털어 내고서는
생명의 기둥으로 우뚝 서 있는
너
떨칠 것 미련 없이 떨치고
이제 생명의 본질만 남아
칼바람에도 미동(微動) 없이
의연한 모습의
오! 너의 거룩한 생애
* 정연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