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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몇 백 년을 살면서도 단 한번도 편히 눕지 않는다 외다리 하나로 온몸 버티어 한평생 꼿꼿이 서 있다 고단한 긴 세월을 마감하는 최후의 순간에만 고요히 누울 뿐 단 한 차례도 무릎을 꺾지 않는다 슬픔마저 푸른 웃음으로 감춘 오! 저 눈부신 직립의 생애 + 나무 아름드리 나무이든 몸집이 작은 나무이든 나무는 무엇 하나 움켜쥐지 않는다 바람과 비와 이슬 햇살과 별빛과 달빛 온몸으로 포옹했다가도 찰나에 작별하는 비움의 미학으로 산다 보이지 않는 뿌리 하나 굳게 지키면 그뿐 눈부신 꽃과 잎새들도 때가 되면 모두 떠나보내 한평생 비만증을 모르고 늘 여린 듯 굳건한 생명의 모습이다 + 나무 속상한 일이 있어 마음 괴로울 때면 나무 그늘 밑으로 걸음을 옮긴다 저 헤아릴 수 없는 잎새들처럼 이 가슴속 쌓인 수많은 사연들 하나 둘 셋.... 나무에게 이야기하면 나뭇잎들은 일제히 귀를 쫑긋 세운다 어느새 내 마음도 푸른 잎새가 된다 + 나무 이 세상 모든 나무들은 제각기 하나의 깃발이다 나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고 하늘 향해 곧추선 저 당당한 몸짓 동구 밖 키다리 미루나무도 날씬한 은행나무도 요조숙녀 목련도 세상 모든 나무들의 이파리는 저마다 하나의 함성이다 깊이에서 높이로 뿌리에서 가지로, 하늘로 용솟음치는 거침없는 생명의 뜨거운 아우성이다 + 나무 나무들은 세상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는다 나무들은 한 평도 안 되는 제 땅에 붙박이로 서 있다 푸른 잎새를 내고 쓸쓸히 낙엽 지면 그뿐 나무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도 나무들은 세상 모든 이들의 다정한 벗이다 세상의 배경이 되어 주는 것으로도 하늘 우러러 부끄러움 하나 없을 나무여! /정연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