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박사가 부산 복음병원의 원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복음병원에는 가난하거나 다른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들이 그에게 진찰이라도 받아 보고 죽겠다며 몰려들었다.
하지만 막상 치료를 받고 나면 치료비와 약값을 낼 형편이 못 되는 환자들 때문에 자신의 월급에서 대신 갚아주느라 그는 늘 가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늦게 그의 방에 한 청년이 찾아왔다. 청년은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두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이렇게 늦은 밤에 나를 찾아왔나요?" 그가 부드럽게 묻자 청년은 용기를 얻은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사실은 저의 어머니가 수술을 해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 치료비 때문에 퇴원을 못해서 ….
어머니를 퇴원시켜 주시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돈을 나중에 꼭 갚아 드리겠습니다." 청년은 큰소리로 흐느껴 울며 애원했다.
그러자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그가 청년의 두 손을 꼭 잡아 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이리 소란스럽게 합니까. 이런 얘기는 조용조용하게 해야지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당신이 언제 나갈 건지 내게 알려 주면, 그 시간에 맞춰 내가 병원 뒷문을 살짝 열어 놓을 테니 조용히 나가시오. 대신 조건이 있소."
청년이 무슨 조건이든지 다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그가 웃으며말했다.
"내가 문을 열어 줬다고 소문을 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난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게 됩니다.그것만 지켜 주면 됩니다." -옮긴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