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시외버스 안에서 벌이진 일입니다.
그것은 불과 10여 분 안팎의 일이었습니다.
만원버스도 아니었고 정류장마다 멈추는 시간이
그리 철저히 지켜지던 때도 아니었습니다.
버스 기사가 엔진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는데,
승객 중 한 사람이 버스를 타려는 사람을 발견하고 말했습니다.
"저기 웬 할머니가 오십니다."
버스 기사가 바라보니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한 할머니가
무언가 머리에 인 채 버스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어서 출발합시다."
"언제까지 기다릴거요."
버스에 타고 있던 어떤 승객이 바쁘다면서
서둘러 떠나기를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버스 기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기, 우리 어머니가 오십니다.
조금 기다렸다 같이 가시지요."
승객은 할 말을 잃고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창가에 앉았던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 할머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승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버스 밖으로 모아졌습니다.
머리 위의 짐을 받아든 청년은 할머니의 손을
부축하여 잰걸음으로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와 청년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승객 중 누군가가
박수를 치자 마치 전염된 듯 너나없이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 할머니는 버스 기사의 어머니도
청년의 어머니도 아니었습니다.
/이원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