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를 바라본다는 것은 꿈을 꾸는 일이다.
헤르만 헤세는 구름을 바라보며 꿈꾸는 소년들을
그의 작품에서 그려냈지만
이 사막에 와서 나는 네가 별을 바라보는 소년으로 자랐으면 한다.
잊지 말아라, 꿈꾸는 일에는 늦은 때가 없다.
별을 바라보듯 그렇게 꿈꾸면서, 느리게 가거라
살아가는 일에 왜 그렇게 바빠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느리게 그러나 쉬지말고 끝까지 가거라.
물을 보아라.
물은 웅덩이를 만나면 고였다가 흐르고 언덕을 만나면
돌아서 간다그러나 흐르는 것을 멈추지는 않는다.
네가 하고 싶은일이 무엇이든 그곳을 향해 물처럼 그렇게 흐르거라
다만 언젠가는 그곳에 가 닿으리라는 믿음만은 버려선 안된다.
3.
한 잡지의 인터뷰에서였다.
기자는
˝미국의 현대작가 가운데 누가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하느냐˝
고 포크너에게 물었다
그 기자는 아마 훼밍웨이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 포크너의 대답은 의외였다.
˝훼밍웨이는 불가능에 도전해 본 적이 없는 작가다.
그는 자신이 가능한 것만을 썼고 그리고 모든 작품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울프는 언제나 자신에게 불가능한 일에 도전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그러므로 나는 창조자로서의 위대성에서
토머스 울프가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말로 포트너는 창조자의 위대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막으로 나아가는 정신,
바다로 나아가는 정신,
더 먼 산으로, 들판으로 떠나보는 정신이란
이러한 불가능에 대한 자신과의 싸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의 영혼은 아름답고 고결하다.
남이 하는 공부해서,
남이 가는 직장에 가고,
남처럼 그렇게 살아가겠느냐.
이름을 내라거나 크게 되라는 뜻이 아니다.
네가 하고싶은 일을 찾고 네가 가고싶은 길을 걸으라는 말이다.
사막에 와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의 하나도 이것이란다.
아들아.
언제나 잊지 말아다오.
불가능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한수산님의 사막에서 쓴 편지 中
5
사막에내리는 달빛
/박해옥
젊은 숫사자 등어리 갈기처럼
크게 펄럭이는 검푸른 잎새 ,
단순한 열망에 까맣게 무르익은
수천 수만의 눈동자는,
사라진 고대 왕국을 부르는
꾸밈없는 저 유치스러운 손짓은,
한 보름 열사의 모래바람 헤치고 온,
오늘 시안 향해 다시 떠나가는 대상을
말없이 따르던 슬픈 그림자만이 아닌,
돈황석굴 눈을 부릅 뜬 윈깡 석불 아래
모래산, 아름다운 곡선되어 물결치던
실크로드 인도하던 사막에 도성의 꿈,
아, 별밤처럼 찬란한 너의 침실 앞
펄럭이는 사막의 아쿠아마린 하늘을,
페르시안 양탄자 위에서
춤추는 마호멧의 젊은 연인들을 ,
아득히 파도치는 물빛 커튼을
나는 지켜주고 싶구나
굵은 소금알 매일 한 줌 씩 씹으며
사하라를 터덜 터덜 걸어가는 우리는,
오늘도 두 개 혹 달린 고독한 낙타는,
느릿 느릿한 걸음 향해 손짓하며
장엄하게 타오르는 해바라기,
너의 고귀한 위용을 알고 있단다
7
사막에 자라는 나무
사막에는 비가 안 옵니다.
나무도 풀잎도 보이지 않고 모래만이 끝없이 끝없이
깔려 있는 곳이 사막입니다.
다른 땅에는 꽃이 피고 새가 울어도
사막에는 뽀얀 모래 위에 봄바람이 이따금 불 뿐입니다.
다른 땅에는 푸른 잎새가 너울너울 늘어지고 그 사이로
차디찬 샘물이 흘러내려도, 사막에는 하얀 모래 위에 여름바람이
이따금 불 뿐입니다.
다른 땅에는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어도
저 사막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끝없는 모래 위에 이따금
겨울바람이 불 뿐입니다.
그러나 어린 벗이여,
이 거칠고 쓸쓸한 사막에는 다만 혼자서 자라는
이름 모를 나무 하나가 있습니다.
깔깔한 모래 위에서 쌀쌀한 바람에 불려 자라는
어린 나무 하나가 있습니다.
어린 벗이여,
기름진 흙에서 자라는 나무는 따스한 햇볕을 받아 꽃이 핍니다.
그리고 고이고이 내리는 단비를 맞아 잎이 큽니다.
그러나 이 깔깔한 모래 위에서 자라는 나무는,
쌀쌀한 바람에 불려서 자라는 나무는,
봄이 와도 꽃필 줄을 모르고 여름이 와도
잎새를 못 갖고 가을에는 단풍이 없이
언제나 죽은 듯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벗이여,
이 나무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것입니다.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가을도 지나고 어떤 춥고 어두운 밤 사막에는 모진 바람이 일어,
이 어린 나무를 때리며 꺾으며 모래를 몰아다 뿌리며
몹시나 포악을 칠 때가 옵니다.
나의 어린 벗이여,
그 나무가 죽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때 이상하게도
그 나무에는 가지마다 부러진 가지에도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꽃이 송이송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이 꽃빞은 별 하나 없는
어두운 사막을 밝히고 그 향기는 멀리멀리 땅 위로 퍼져갑니다.
-피천득의 <어린 벗에게> 중에서
9
- 좋은생각
두 사람이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여행 중에 문제가 생겨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뺨을 때렸습니다.
뺨을 맞은 사람은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래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뺨을 때렸다.˝
그들은 오아시스가 나올 때까지 말없이 걸었습니다.
마침내 오아시스에 도착한 두 친구는
그곳에서 목욕을 하기로 했습니다.
뺨을 맞았던 사람이 목욕을 하러 들어가다 늪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때 뺨을 때렸던 친구가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늪에서 빠져 나왔을 때 이번에는 돌에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그를 때렸고 또한 구해준 친구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내가 너를 때렸을 때는 모래에다가 적었는데,
왜 너를 구해준 후에는 돌에다가 적었지?˝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혔을 때 우리는 모래에 그 사실을 적어야 해.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버릴 수 있도록..
그러나 누군가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였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돌에 기록해야 해...
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우리 속담에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데..
가만 돌아보면 우리는 그것을 거꾸로 할 때가 많습니다.
잊어서는 안될 소중한 은혜는 물에 새겨 금방 잊어버리고
마음에서 버려야 할 원수는 돌에 새겨 두고두고 기억하는 것이지요..
은혜를 마음에 새기면 고마움이 마음에 남아 누구를 만나도...
무슨 일을 만나도 즐겁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원수를 새기고 나면 그것은 괴로움이 되어
마음속에 쓴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 여서 은혜를 새기든
원수를 새기든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한번 내 마음을 조용히 돌아봅시다.
지금 내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돌아봅시다.
내 마음 가득히 원수를 새기고 쓴 뿌리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은혜를 새기고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원수는 모래나 물에..
은혜는 돌에 원수와 은혜를 혼돈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게요..
그럼 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돌아보는
하루이기를 바라면서 이만 물러갑니다..
10
- 시마을
사막에 남긴 우물
두 명의 유럽인이 모험 삼아
아프리카의 사막을 횡단해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사막 여행은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물도 없고, 사람도 없고, 문화생활도 전혀 누릴 수 없었으니까요.
두 사람은 죽을 고생을 하여 겨우겨우 사막을 횡단했습니다.
사막 여행이 끝났을때 두 사람은
´우리가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 기념할 만한 것을 남기자´
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으로 기념비를 세우자˝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우리가 사막을 여행하는 동안 물이 없어 고생했으니
다른 여행객들을 위해 우물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다가
결국은 이 두 가지를 다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사막에 기념비와 우물을 만들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다시 아프리카의 사막을 찾았습니다.
기념비는 모래 바람에 휩쓸려 온데간데 없어졌지만
우물만은 여전히 남아
여행객들의 타는 목을 축여주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남을 위한 일이 영원히 남는 법입니다.
출처: 행복한 인터넷 마을
13
사막이 되지 않기 위해
/이희중
우리는 더러 사막과 마주친다
그때 한 걸음을 내디디면 스스로 사막이 될 수 있다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혼자 밤길을 걸을 때
결국 노변에 주저앉아 꺽꺽거릴 때
자동차가 새보다 빨리 곁을 지나갈 때
믿었던 사람이 등을 보일 때
우산 없이 비를 맞을 때 느닷없 이 욕설을 들을 때
아무도 나를 보고 웃지 않고 이름을 기억 해주지 않을 때
내가 살아서 세상이 더 더러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
화를 내는 불길 너머로 흐르는 눈물 너머로
우 리는 사막을 본다 내디디면 누구나 곧 한 필지의 사막이 된다
누군가 그를 불러 웃어준다면
그의 이름을 기억해준다면
떠난 이 그에게 돌아온다면
그의 손을 잡고 가슴을 보여준다 면
그를 다시 길가 술집으로 데려가 함께 앉는다면
차를 세워 태운다면
우산 속으로 젖은 그를 들인다면
그가 있어 세상이 더 아름다움을 알려준다면
그 눈의 불길과 눈물을 거두어 준다면
그는 사막으로 떠나지 않고 사막이 되지 않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당장 오늘 누구를 위로해주지 않으면
그는 내일 사막이 될지 모른다
그가 사막이 되기 전에
내가 사막이 되지 않고 견디는 데에
그의 노래가 힘이 되었음을 전할 수 있었다면
그는 아직도 노래할까
그를 본 적도 없는 나는 오늘도
그가 남긴 푸른 노래를 들으며
사막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고 있다
17
사막에 자라는 나무
/ 피천득
사막에는 비가 안 옵니다.
나무도 풀잎도 보이지 않고 모래만이
끝없이 끝없이 깔려 있는 곳이 사막입니다.
다른 땅에는 꽃이 피고 새가 울어도
사막에는 뽀얀 모래 위에 봄바람이 이따금 불뿐입니다.
다른 땅에는 푸른 잎새가 너울너울 늘어지고
그 사이로 차디찬 샘물이 흘러내려도,
사막에는 하얀 모래 위에 여름바람이 이따금 불뿐입니다.
다른 땅에는 갖은 곡식이 열리고 노랗게 붉게 단풍이 들어도
사막에는 하얀 모래 위에 가을바람이 이따금 불뿐입니다.
다른 땅에는 눈이 나리고 얼음이 얼어도 저 사막에는
아무러한 변화도 없이 끝없는 모래 위에
이따금 겨울바람이 불뿐입니다.
그러나 어린 벗이여,
이 거칠고 쓸쓸한 사막에는 다만 혼자서 자라는
이름 모를 나무 하나가 있습니다.
깔깔한 모래 위에서 쌀쌀한 바람에 불려 자라는
어린 나무 하나가 있습니다.
어린 벗이여,
기름진 흙에서 자라는 나무는 따스한 햇볕을 받아 꽃이 큽니다.
그리고 고이고이 나리는 단비를 맞아 잎이 큽니다.
그러나 이 깔깔한 모래 위에서 자라는 나무는,
쌀쌀한 바람에 불려서 자라는 나무는,
봄이 와도 꽃필 줄을 모르고 여름이 와도 잎새를 못 갈고
가을에는 단풍이 없이 언제나 죽은 듯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벗이여,
이 나무는 죽은 것은 아닙니다.
살아 있는 것입니다.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가을도 지나고 어떤 춥고 어두운 밤 사막에는 모지 바람이 일어,
이 어린 나무를 때리며 꺾으며 모래를 몰아다
뿌리며 몹시나 포악을 칠 때가 옵니다.
나의 어린 벗이여,
그 나무가 죽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때 이상하게도 그 나무에는 가지마다 부러진 가지에도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꽃이 송이송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이 꽃빛은 별 하나 없는 어두운 사막을 밝히고
그 향기는 멀리멀리 땅 위로 퍼져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