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글
Andrey Yakovlev와 Lili Aleeva의 작품
죽음 앞에서도 사랑으로
요한과 베티는 큰 농장을 일구기 위해 외딴 산속에 집을 짓고 열심히 일하는 부부였다.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남편 요한은 한 달에 한 두 번씩 일용품을 구하기 위해 집을 떠나야 했다.
어느 날 요한은 이번엔 밀린 일이 많기 때문에 며칠 더 걸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마을로 내려갔다.
갓난아이와 어린 딸과 함께 집에 남은 아내 베티 역시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 농사일을 하느라 미뤄두었던 집안일은 산더미였다.
베티는 우선 빵을 구울 장작을 패기로 했다. 그녀가 뒤뜰로 가 나무를 도끼로 내려찍으려는 순간 다리에 따끔하고 쓰린 통증이 느껴졌다. 나무 속에 숨어있던 독사에 물린 것이었다.
베티는 순간 아찔했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 도와 줄 사람이라곤 남편뿐이 없는데 남편도 이삼 일이 지나야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가 죽고 나면 아이들은 어쩌지. 양식도 다 떨어졌는데..."
베티는 독이 온 몸에 퍼지기 전에 아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만들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뙤약볕 아래서 장작을 팼다. 온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빵을 구웠다. 눈앞이 흐려지고 점점 고통이 엄습해 왔지만 그녀는 그럴수록 더 바삐 몸을 움직였다.
베티는 어린 딸에게 일렀다.
"엄마는 조금 후에 깊은 잠에 빠질 거란다. 그러면 너는 아빠가 오실 때까지 엄마가 구워놓은 빵과 우유를 네 동생에게 잘 먹이고..."
베티의 이마엔 땀이 비 오듯 흘렀고 옷은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러는 동안 놀랍게도 무서운 독이 땀과 함께 씻겨져 나왔다. 그녀는 두 아이를 위해 너무 열심히 일하느라 아픔을 느끼지 못했으나 독은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베티는 그때까지도 그 사실을 모른 채 뜨거운 아궁이 옆에서 땀을 흘리며 빵을 굽고 있었다.
마지막 기회(김원숙, ‘좋은생각’ 중에서)
며칠 전부터 오빠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홀로 칠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엄마. 그런 엄마와 싸우는 오빠에게 대들다가 나는 뺨을 맞아 오른쪽 청각을 잃었다.
결국 나는 오빠에게 등을 돌렸고 남편 따라 미국에 온 뒤로는 남이 됐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오빠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가 가는 동안에도 별 생각이 다 스쳤다.
이내 힘없는 오빠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해서 오빠는 말을 잘 잇지 못했다. 어색한 대화가 오간 뒤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오빠가 말했다.
“지금까지 너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다. 부디 용서해다오.”
순간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나도 잘한 것 없어요. 오빠... 목소리가 안 좋은데 건강 잘 챙기세요.” 나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허탈했다.
40여 년 만에 듣는 오빠의 사과가 내 마음의 상처를 다 치유할 수는 없었다. 전화한 것을 후회하는 한편 약해진 오빠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며칠 뒤 올케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고마워요. 고모한테 전화 받은 다음 날 오빠 편안하게 가셨어요. 위암으로 고생하셨거든요. 오빠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늘 고모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짧은 대화가 지상에서 오빠와 화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니, 내가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얼마든지 한쪽 귀로도 오빠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을텐데...
후회로 가슴이 미어졌다. 이미 끊어진 수화기에 대고 나는 울며 말했다.
“오빠 정말 미안해. 나도 용서해 줘.”
병 속의 편지
1999년 3월에 영국의 템즈강 어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한 어부의 그물에 맥주병 하나가 걸려 나왔다. 어부가 병의 뚜껑을 열어 보니 놀랍게도 빛바랜 종이 두 장이 나왔다.
‘이 병 속의 편지를 발견하시는 분께, 부디 이 편지를 제 아내 엘리자베스에게 전해 주시고 전쟁터로 나가는 이 병사의 축복을 받으십시오.’
이어서 다음 장에는 아내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군함 위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소. 당신에게 이 편지가 전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을 병 속에 담아 바다에 띄우오. 만약 이 편지가 당신 품으로 가거든 받은 날짜와 시간을 써서 소중히 간직하며 기다려 주오. 사랑하는 이여, 그만 안녕.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1914년 9월 ×일’
어부는 편지 아래에 쓰인 날짜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려 85년 전에 씌어진 편지였던 것이다. 어부는 영국 정부에 그 편지를 맡기며 주인을 찾아주기를 부탁했다.
편지를 쓴 영국군 토머스 휴즈는 1914년 프랑스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도버해협을 건너는 군함 위에서 아내 엘리자베스에게 편지를 쓰고 맥주병에 담아 고향 쪽 바다로 던졌다.
안타깝게도 그는 12일 뒤 첫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전사 통지서를 받자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고향을 떠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두 살짜리 딸 크라우허스트와 함께….
영국 정부는 수소문 끝에 엘리자베스가 1979년 세상을 떠났으며 그 딸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게 남편의 애틋한 사람을 담은 병 속의 편지는아내가 아닌 딸에게 배달되었다.
편지 사본은
‘세기의 러브레터’ 수집으로 유명한 웰링턴 알렉산더 턴벌 도서관에 기증돼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