偶吟(우음)우연히 읊다
吾亦愛紛華(오역애분화) 나도 본래 번화한 삶 좋아했었지.
身病心仍靜(신병심잉정) 몸이 병들자 마음 따라 고요해지고.
途窮世自遐(도궁세자하) 길이 막히자 세상 절로 멀어지더군.
雲山相誘掖(운산상유액) 구름과 산은 나를 끌어 부축해주고
湖海與漸摩(호해여점마) 호수랑 바다는 갈수록 어루만지네.
鐵鎖何須羨(철쇄하수선) 누군들 처음부터 선골(仙骨)이었나.
誰曾有仙骨(수증유선골) 선계仙界로 가는열쇠를 부러워 말자.
蓬萊路不差(봉래노불차) 봉래산은 어김없이 갈 테니까.
/윤선도(尹善道·1587~1671)
시조시인으로 이름난 고산(孤山) 윤선도가 59세 때인 1645년에 지었다. 정계에서 물러나 전라도 해남의 금쇄동(金鎖洞)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외지고 아름다운 골짜기에 머물며 그는 ‘산중신곡(山中新曲)’을 지어 산수(山水)에 묻힌 행복을 노래하였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산수를 그냥 좋아해서일까? 이 시에서는 세상에 부대끼며 사느라 몸도 병들고 벼슬길도 막힌 막다른 상황을 피해서 온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곳의 자연은 병든 몸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마지못해 들어왔어도 몸과 마음이 웬만큼 치유되었고 스스로도 선골(仙骨)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윤선도처럼 고백할 노년의 인생이 지금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