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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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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보’는
예수님에게서 유다의 남자,
비범한 ‘나자렛’ 사람의 얼굴은 보았지만,
그분 삶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의 얼굴’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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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얼굴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나자렛’ 사람으로 그려진 초상이 아니라
그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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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안에 심어 있는 ‘하느님의 모상’,
그 참된 ‘사랑의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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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얼굴을 드러내는
‘사랑하는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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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주님께서
함께 계셔도 주님의 얼굴을 깨달을 수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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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주님에 대한
그리움의 목적지는 우리자신 안에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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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사랑을 해야만 그분 얼굴을 만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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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