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漢詩)
"황새가 봉황의 깊은 뜻을 어찌 알꼬" 굴뚝새가 황새의 마음을 모르듯 황새가 봉황의 깊은 뜻을 어찌 알꼬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평생을 떠돌아다닌 방랑시인 김삿갓! 각박한 인심을 풍자하며 파격적인 한자를 쓴 그의 시는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 같다.
知未時八 安逝眠 (지미시팔 안서면) 아침 8시 전에 편안히 죽은 듯 잠자고 있으면
自知主人 何利吾 (자지주인 하리오) 스스로 대접 받는 주인 노릇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느니.
女人思郞 一切到 (여인사랑 일체도) 여인이 남정네 사모하면, 모든 것 오나니
絶頂滿喫 慾中慾 (절정만끽 욕중욕) 절정의 순간을 만끽하는데 이르니, 욕망 중에 으뜸이니라.
男子道理 無言歌 (남자도리 무언가) 도시 남자의 도리란 말없이 행위로 보여야 하거늘,
於理下與 八字歌 (어이하여 팔자가) 순리에 따른다면 팔자 타령으로 그만이지만
岸西面逝 世又旅 (안서면서 세우려) 해지는 서녘 바다 떠나야 할 때 이 속세 여정 다시 걷고파
飛我巨裸 王中王 (비아거라 왕중왕) 모든 것 벗어버리고 날아가니, 왕중왕이 되었도다.
김삿갓(1807~1863)의 본명인 김병연이 다섯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 당시 선천부사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군에게 항복하였고 이듬해 난이 평정된 후 김익순은 처형당하고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영월군 와석리 깊은 산중에 숨어살게 되었다.
김병연이 20세 되던 해인 1827년 영월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할아버지의 행적을 모르고 있던 그는 김익순의 죄상을 비난하는 글을 지어 장원급제를 하게된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로부터 숨겨왔던 집안내력을 듣게 되었고 역적의 자손이라는 것과 조부를 비판하는 시를 지어 상을 탄 자신을 용서할 수 가 없었다. 하늘이 부끄러워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던 그는 아내와 아이와 어머니를 가슴아픈 눈물로 뒤로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으니...
삿갓으로 하늘을 가린채 세상을 비웃고 인간사를 꼬집으며 정처없이 방랑하던 그는 57세 때 전남 화순땅에서 객사하여차남이 이곳 와석리 노루목에 모셨다 한다.
漂浪一生嘆 (표랑일생탄)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我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아자상)새도 집이 있고 짐승도 집이 있어 모두 거처가 있건만 거처도 없는 내 평생을 회고해보니 이내 마음 한 없이 서글프고나.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짚신신고 죽장 짚고 가는 초라한 나의 인생여정 천리 길 머나먼데......
김삿갓이 여러 고을을 방랑하던 중 한 서당에 도착하게 되어 물이나 한 모금 얻어 마실까 하였는데 훈장이 김삿갓의 용모를 보고 대꾸도 안하자 그 즉석에서 지은 한시를 보면 얼마나 한문을 자유로이 다루었는지 짐작이 간다.
書堂乃早知 ( 서당내조지) 서당에 당도했으나 (내가 온 것을) 일찍 알아차리지 못하였구나.
學童諸未十 ( 학동제미십) 배우는 아이들이 모두 열이 채 안되고,
房中皆尊物 ( 방중개존물)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존귀하구나.
訓長來不謁 ( 훈장내불알) 훈장이 나와서 (나를) 내다보지도 아니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