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수사법에 억양개합(抑揚開闔)이 있다. 억양은 한 번 누르고 한 번 추어주는 것이고, 개합은 한 차례 열었다가 다시 닫는 것이다. 말문을 열어 궁금증을 돋운 뒤 갑자기 닫아 여운을 남긴다. 평탄하게 흐르던 글이 억양개합을 만나 파란이 일고 곡절이 생긴다.
김삿갓이 떠돌다 회갑 잔치를 만났다. 목도 컬컬하고 시장하던 터라 슬며시 엉덩이를 걸쳤다. 주인은 그 행색을 보고 축하시를 지어야 앉을 수 있다고 심통이다. 과객이 지필묵을 청한다. 제까짓 게 하는데, "저기 앉은 노인네 사람 같지 않으니(彼坐老人不似人)"라고 쓴다. 자식들의 눈초리가 쑥 올라갔다. "아마도 하늘 위 진짜 신선 내려온 듯(疑是天上降眞仙)." 금세 좋아 표정이 풀어진다. 일억일양(一抑一揚), 한 번 깎고 한 번 올렸다.
다시 제3구. "이 가운데 일곱 자식 모두 다 도둑이라(其中七子皆爲盜)." 다시 눈썹이 바짝 올라갔다. 화낼 틈도 없이, "복숭아를 훔쳐다가 수연에 바치누나(偸得碧桃獻壽宴)" 하고 쐐기를 콱 박는다. 한 알만 먹으면 3천년을 산다는 천도복숭아를 천상에서 훔쳐와 아버지께 바치니, 천상 신선이 부럽지 않다. 일개일합(一開一闔), 한 번 문을 열었다가 도로 꽝 하고 닫았다.
금번 안대회 교수가 펴낸 정만조의 '용등시화(榕燈詩話)'를 보니 여기에도 비슷한 얘기가 실렸다. 상황은 앞서와 같다. 주인이 운자를 불러 시를 청한다. 거지 손님이 저도 짓겠노라 나서자 다들 같잖다는 표정이다. 붓을 들어 "높이 올라 바닷가 바라보자니, 십 리에 백사장이 이어졌구나(登高望海邊, 十里平沙連)"라 하였겠다. 주인이 욕을 하며, "대체 무슨 소리요? 축하시를 써달랬더니." 객은 씩 웃는다. "마저 보시구려" 하더니, "하나하나 사람 시켜 줍게 해서는, 그대 부모 나이를 헤아려보세(箇箇令人拾, 算君父母年)"라고 쓴다. 순간 풍경 놀음이 십 리 해변의 모래알 수만큼 오래 사시란 덕담으로 변했다. 주인은 사람 못 알아본 사죄를 하고, 거지 손님을 끌어 윗자리로 앉혔다.
억양개합, 한 번 누른 뒤 다시 올리고, 여는 척 어느새 슬며시 닫는다. 밋밋하면 파란이 생길 리 없다. 꺾고 뒤틀어야 곡절이 나온다. 시내가 평지를 흐르다 여울이 되고 폭포와 만나는 격이다. 글쓰기의 한 묘수가 여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