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상감매조죽문매병
청자를 영어로 말할 때는 셀라돈(celadon)이라고 한다. 백자는 화이트 포슬린(whiteporcelain)이라고 직역했으면서 청자만 유독 별도의 명칭을 갖게 된 데는 유래가 있다. 청자는 중국사람들이 4세기에 초보적인 단계로 시작하여 10세기에 완벽한 수준으로 만들어냈다. 뒤이어 고려사람들은 10세기부터 이를 벤치마크하기 시작하여 12세기에는 중국과 맞먹는 양질의 청자를 생산해냈다. 이후 세계 어느 나라도 청자를 만들지 못했다. 청자가 처음 유럽에 소개될 때 그들은 이 신비한 빛깔이 마치 목동들이 입는 초록색 바지인 셀라돈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청자는 빛깔이 강하여 무늬를 나타내기 힘들었다. 도자기의 3요소인 형태, 빛깔, 문양에서 중국사람들은 이 문양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백자로 넘어갔다. 그러나 고려 사람들은 상감 기법을 사용하여 청자에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 넣었다. 상감이란 무늬를 새긴 다음 백토와 자토로 메우는 기법이기 때문에 회화적인 묘사가 아니라 연꽃, 모란꽃, 국화꽃, 학과 새털구름 등을 디자인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중 보물 903호 '청자상감 매조죽문 매병(사진)'은 예외적이라 할 만큼 회화적인 멋이 들어 있다. 풍만한 어깨에서 급격히 S자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린 형태 자체가 일품인데 몸체 가득 대나무와 매화를 그려 넣고 그 주위에 춤추는 학과 멀리서 날아드는 학들을 한 폭의 그림으로 나타냈다. 필치뿐만 아니라 공간 구성도 아주 능숙하다. 지면은 따로 나타내지 않고 대나무 뿌리가 길게 옆으로 뻗어나간 것으로 땅을 상징하였다. 입술과 굽 주위에는 번개무늬를, 어깨 위로는 여의두문(如意頭紋)을 띠로 둘러 몸체가 마치 한 폭의 캔버스인 것처럼 감싸준다.
이 매병은 아쉽게도 몸체가 파손되어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지만 고려청자 중 가장 멋진 그림 솜씨를 보여주는 명품인지라 나라에선 보물로 지정하였다.
[유홍준의 국보순례] [135] 청자상감매조죽문매병 /유홍준 명지대 교수·미술사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