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철채운학문매병
고려자기가 세계도자사에서 높은 명성을 얻는 데는 그 다양성도 한 몫한다. 고려자기의 대종은 말할 것도 없이 초록빛을 발하는 순청자와 상감청자다. 그러나 고려자기 중에는 드물지만 백자도 있고, 검은색의 흑유(黑釉)도 있다. 또 갈색을 기조로 하는 철화(鐵畵)청자도 있고, 청자철채(鐵彩)라고 해서 검은 초콜릿 빛을 띠는 것도 있다. 청자 이외의 다른 빛깔 자기가 약 10% 정도 된다고 생각되는데 이 10%의 변주가 있어서 고려자기는 보다 다양한 도자기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호림박물관의 '청자철채 상감 운학문 매병'(사진)은 고려자기의 이런 면모를 잘 보여준다. 빛깔이 검은색을 띠고 있지만 청자라고 하는 것은 바탕흙[胎土]과 유약이 청자와 같기 때문이다. 제작 과정을 설명하자면 청자 태토로 매병을 빚은 다음 몸체 전체에 철분이 많은 안료를 듬뿍 바르고 그 위에 청자와 똑같은 유약을 입힌 다음 구워낸 것이다. 무늬 새김은 한 마리의 학과 한 가닥 새털구름을 음각으로 그린 다음 그 속을 백토로 메워 넣는 상감기법을 구사했다. 그래서 '청자철채 상감 운학문 매병'이라고 부른다.
기형을 보면 각진 아가리에 짧은 목을 하고 풍만한 어깨에서 몸체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선이 아주 유려하다. 철채 안료를 짙게 칠해 거의 검은 빛을 띠고 있어 백상감으로 나타낸 학과 새털구름이 상큼히 도드라져 보인다. 특히 이 매병은 학의 표현이 일품이다. 목과 다리를 길게 뻗은 것을 보면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라 무늬로 디자인한 것이 분명하지만 어딘지 처연하기도 하고 외롭게도 보인다. 그래서 장욱진 화백의 천진스러운 그림이 연상되기도 한다.
철채청자는 그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한결같이 문양 표현이 뛰어나 데포르메이션의 묘미를 살려 인삼잎[蔘葉紋]이나 풀꽃무늬[草花紋]를 활달하게 그린 명품도 전하고 있다. 이러한 철채청자는 강진 사당리 가마에서 일반 청자와 동시에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홍준 : 명지대 교수·미술사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