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을 뒤적이다 '늙다'가 귀에 들렸다
흰 머리칼 굽은 허리로 엄마가 말을 건다
아가야
저 홍시 하나~
감나무가 흔들렸다
사전을 뒤적이다 '죽다'가 눈에 잡혔다
굽은 허리 곧게 편 채 엄마는 말이 없다
아직도
감나무에는
홍시가 주렁주렁
사전을 뒤적이다 '살다'가 눈에 들어왔다
아들 내외 손주 녀석이 대문을 열고 뛰어든다
마당에
감나무 하나
튼튼하게 서 있다. /김수엽
한 해를 보낼 즈음이면 생각이 많아진다. 이것저것 정리할 것도 처리할 것도 많은데 마음만 부산스럽다. 그럴 때 사전을 들고 앉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인터넷 검색이 아무리 편해도 두툼한 종이사전의 맛은 깊이부터 다르다. 늙은 사전을 들고 앉으면 세상의 시간표에 따라 들썩대던 시간도 가지런해지는 것 같다.
많은 말이 살고 있는 사전. 그중에도 '늙다'와 '죽다'와 '살다'만 한 생의 요약이 있을까. 삶을 한 줄로 쓰면 나서, 살고, 죽는 것. 그런데 '살다'를 끝에 놓으니 삶은 이렇게 잇는 유기체구나 싶다. 죽을 둥 살 둥 힘들어도 새해의 삶은 또 새로운 사전을 쓸 것이다. '대문을 열고 뛰어'드는 새 생명들이 새 세상을 열어갈 테니까! //정수자 시조시인/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