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지 않은 풋것처럼
1℃에서 살고 싶다
손가락이 가늘고 긴
그 남자가 생각 나
여름밤 탑동 바닷가
하얀 건반 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너를
열어보고 싶었다
불타는 냉장고 속
먼저 간 첫사랑이
코드를 뽑아 버리자
별이 되어 맺혔다 /이경숙
상쾌한 온도 되찾기가 이리도 힘든 일이던가. 처서 지나면 가을 맛 드는 삽상한 바람에 행복했는데 올 폭염은 뒤끝도 작렬이다. 더위 식힐 냉수 찾느라 더 자주 연 냉장고도 올여름은 숨이 더 찼겠다. 냉장고를 열면 그 속의 풋것들처럼 몸 마음 싱싱해질 서늘한 기온이 간절해지곤 했다.
그런데 '시들지 않는 풋것' 같은 '첫사랑' 냉장고도 있나 보다. '하얀 건반'이 될 정도로 생각한 '그 남자'는 '시도 때도 없이 열어보고 싶'던 그 열망을 알았을까. 겉은 차가우나 '불타는 냉장고 속' 같은 정념을 짐작이나 했을까. 대부분 혼자 앓기 마련인 첫사랑은 그렇게 추억의 냉장고 속에 갇힌다. 하지만 냉장 보관 중인 추억도 '코드를 뽑아 버리'면 끝이다. 그래도 '별이 되어 맺'히니 가끔 불러보면 되리라. 이 뜨거운 여름 또한 지나가면 별처럼 돌아보게 하듯. // 정수자 시조시인/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