結廬臨古道(결려임고도) 사는 집은 오래된 길가에 있고 日見大江流(일견대강류) 흘러가는 큰 강물을 날마다 본다. 鏡匣鸞將老(경갑난장로) 거울 속에서 난 새는 시들어 가고 花園蝶已秋(화원접이추) 동산에 꽃이 피어도 나비는 벌써 가을이야. 寒沙初下雁(한사초하안) 찬 모래밭에 기러기 막 내려앉고 暮雨獨歸舟(모우독귀주) 저녁비 맞으며 배가 홀로 돌아온다. 一夕紗窓閉(일석사창폐) 밤새도록 비단 창문 닫아거노니 那堪憶舊遊(나감억구유) 옛적에 놀던 일이 어쩜 그리 그리울까?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이 친구에게 편지를 부쳤다. 결혼하기 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소식을 궁금해 한다는 말을 전해왔나 보다. 몇 글자 시로 나의 근황을 적어 보낸다. 사는 곳은 큰길가, 과거로 통해 있어. 집에서는 날마다 앞을 흐르는 큰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 결혼 생활을 말해줄까? 내 거울 속에는 짝 잃은 난 새가 늙어가. 동산에 꽃이 피어도 소용없어. 나비 저만 홀로 가을처럼 꽃을 찾지 않고 있지. 나는 늘 혼자야. 강을 바라보니 날이 추워진 모래밭에 벌써 기러기 날아와 앉고, 저녁 비 내려 배도 돌아왔어. 하지만 나를 찾는 이는 없어. 깊은 밤이 돼도 창문 열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러니 너와 함께 놀던 즐거웠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지 않을 수 있겠어. 너는 잘 지내.//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