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그 친구
냇가로 들판으로
짓궂게 달려와서
모른 척 툭 던지던
시방, 나
그 풀꽃 반지
뜬금없이 끼고 싶다. /조명선
여름이면 벌거벗고 '냇가로' 또 '들판으로' 내닫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방학 냇물은 그렇게 까매진 얼굴들로 더 반짝거렸다. 수영복 따위 모르던 때는 '빤스'만도 부끄럽지 않았으니 개중에는 '풀꽃 반지'를 '툭' 던지고 내뺀 머슴애도 있었던 게다.
풀꽃도 눈빛도 개똥벌레도 별처럼 맑던 그때 종종 만들어본 '풀꽃 반지'. 여러 겹을 길게 엮으면 토끼풀꽃은 좋은 화관도 되었다. 화관을 서로 씌우며 신부라도 된 양 깔깔대던 풀밭 시절의 이야기다. 풀꽃 화관이라도 기분은 올림픽 월계수 관이나 진배없었다고나 할까. 그러는 동안 벼도 수수도 목이 굽어갔다.
'뜬금없이 끼고 싶다'는 구절에 손가락을 가만히 만져본다. 한여름 더위를 식혀준 옛 개울가를 더듬거려본다. '뜬금없이' 그리운 개구리 같은 친구들은 어디서 이 폭염을 나고 있을까. 리우의 벌거벗은 춤이며 환호로 긴 폭염을 물리는 나날, 이겨도 져도 우는 젊음들에게 화관을 얹어준다. 수포는 아니려니, 오늘을 건너는 무수한 땀들에게도.
// 정수자 시조시인/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