浪吟(랑음)
제멋대로 읊는다
口耳聾啞久(구이농아구)
입은 말하지 않고
귀는 듣지 않은 지 오래지만
猶餘兩眼存(유여양안존)
그래도 두 눈은 남아
또랑또랑 뜨고 있다.
紛紛世上事(분분세상사)
어지럽고 시끄러운
세상만사
能見不能言(능견불능언)
볼 수는 있어도
말할 수는 없구나.
조선 전기의 선비 삼가(三可) 박수량(朴遂良· 1475~1546)이 지었다. 그는 혼란한 연산군과 중종 시대에 지조를 지켜 고향 강릉에 물러나 살았다. 광기의 세상에도 권력과 부를 향해 정신줄 놓고 달려드는 사람들 많다. 세상이 미쳐 날뛸 때 그들과 함께 미친 척하고 나서야 한 자리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는 오히려 입도 귀도 닫아버렸다. 귀로 듣고 정직하게 말로 내뱉었다가는 자칫 큰코다칠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세상 몰라라 할 수 있을까? 눈을 벌겋게 뜨고 지켜보며 견뎌야 한다. 그는 광기와 폭압의 시대를 견디는 정신을 밝혀서 "내가 배움도 없으면서 진사에 급제했으니 욕됨이 없어 좋고, 땅도 없으면서 날마다 두 끼를 먹으니 굶주림이 없어 좋고, 덕망도 없으면서 산수에 머무니 속됨이 없어 좋다"라고 했다. 세 가지가 좋다는 '삼가'란 호는 그런 뜻에서 나왔다.//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