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활짝 열린 콘센트에
벌이 플러그를 꽂는 순간
온 세상 환합니다
넝쿨넝쿨 잎사귀
푸르게 푸르게 밝습니다
겨울, 봄, 여름…… 점멸하는 거리
울타리 세워 담장 세워
저 멀리 가을까지 닿은 전선에
늙은 호박 골골이 환합니다 /엄재국
호박꽃이 활짝 피어 있다. 벌이 붕붕 날아와 꽃에 내려앉는다.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는 순간이다. 환한 빛의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다. 시골집에 처음 전기가 들어오던 때처럼. 이제 가을의 끝까지 호박은 매일 전력 공급을 받는다.
엄재국 시인은 시 '꽃밥'에서 "꽃을 피워 밥을 합니다/ 아궁이에 불 지피는 할머니/(…)/ 만개한 꽃잎에 밥이 끓습니다/ 밥물이 넘쳐 또 이팝꽃 핍니다"라고 썼다. 모든 꽃의 꽃핌을 보노라면 어머니께서 솥에 쌀을 안쳐 밥을 짓는 것만 같다. 어머니께서 고봉밥을 지어 사랑을 보태듯이 꽃은 피어 이 세상에 밝음을 보탠다. 꽃핌은 우리에게 활짝 트인 시계(視界)를 보여준다. 어둠의 한가운데에 전구가 켜졌을 때처럼 혹은 갠 하늘처럼.// 문태준 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