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는 불이 켜진 자정 넘어 아파트촌
듬성듬성 이 빠진 곳 불협화음 걸리지만
한번쯤 불어보고 싶다,
옆집 오빠 하모니카처럼
반듯한 네모 네모 숨죽인 칸칸마다
그 입술 스칠 때면 내 가슴 열리는 소리
철 이른 목감기인 듯
목젖 울컥, 복받치고
실비 같은 비브라토 명치께 적실 즈음
별꽃 열꽃 다투어 피던 열여섯 베갯머리
아마도 그때인가 보다,
불면에 감염된 것은 /박해성
잠 못 드는 밤이 느는 폭염 속이다. 사방팔방 아파트 불빛도 식을 줄 모른다. 그럴 때 멀리 뵈는 아파트는 똑 하모니카다. '한 번쯤 불어보고 싶다'는 마음 속으로 소환되는 추억의 하모니카. '열여섯 베갯머리'에 '열꽃 별꽃' 다 피워도 모자라던 그 '옆집 오빠'의 하모니다. 얼마나 간절히 감미로웠을까. 그때 '감염된' 불면으로 일생의 그리움을 알고 시병(詩病)도 앓나 보다.
불면의 영혼이 늘어나는 즈음. 냉장고 소리에도 촉각이 곤두선다. 그럴 때 '실비 같은 비브라토' 하모니가 닿는다면 그냥 깊이 서성거리겠다. 가늘게 떠는 비브라토 선율로 명치께를 적시곤 하던 하모니카. 그런 추억의 여운이 있어 열대야도 또 안고 넘어가리라.//정수자 시조 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