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이 이재의(李載毅)와 사단(四端)에 대해 논쟁했다. 이재의가 논박했는데 논점이 어긋났다. 가만있을 다산이 아니다.
"이달 초 주신 편지에서 사단(四端)에 관한 주장을 차분히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과 큰 차이가 없더군요. 노형께서 많은 사람 틈에 앉아 날마다 시끄럽게 지내시다가, 이따금 한가한 틈을 타서 대충 보시기 때문에 제 글을 보실 때도 심각하게 종합하여 분석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주신 글의 내용이 제 말과 합치되는데도 결론에서는 마치 이론(異論)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더군요. 또 혹 제 주장은 애초에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주신 글에서는 한층 더 극단적으로 나가기도 했으니, 이는 모두 소란스러운 중에 생긴 일입니다. 지금 크게 바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 두 사람이 앞에는 푸른 바다가 임해 있고 뒤에는 솔바람이 불어오는 완도의 관음굴(觀音窟)로 함께 들어가 보고 듣는 것을 거두고 티끌세상을 벗어나, 마음속에서 환한 빛이 나오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런 뒤에야 저의 당면토장(當面土墻), 즉 담벼락을 맞대고 있는 듯한 답답함과 노형의 장공편운(長空片雲), 곧 드넓은 하늘에 걸린 조각구름 같은 의심이 모두 탁 트여서 말끔히 풀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비록 1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는다 해도 반드시 한 곳으로 귀결될 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감히 두 번 다시 말하지 않겠다고 한 까닭입니다." '답이여홍(答李汝弘)'에 나온다.
다산은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다. 글을 읽고 느낀 심정을 당면토장, 즉 흙벽과 마주하고 앉은 느낌이라고 적었다. 편지 속의 속내는 이렇다. 글을 잘 보았다. 논점도 없고, 결국 같은 이야기를 엄청 다른 이야기처럼 했다. 분잡스러운 중에 호승지심(好勝之心)으로 쓴 때문이 아니냐. 아무도 없는 완도의 관음굴로 함께 들어가 끝장 토론을 벌이자. 이런 식으로는 10년간 토론해도 제소리만 하다가 말 것이다.
듣지도 않고 언성부터 높이지만 결국은 같은 소리다. 처음부터 알맹이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다르다는 소리만 들으면 된다. 지금도 사람들은 같은 말을 다른 듯이 사생결단하고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