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행휘찬(言行彙纂)'에 깊이의 두 종류를 논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사람의 깊이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심침(深沈)이다. 마치 말이 어눌하여 스스로를 지키는 듯한데 남을 포용하고 사물을 인내한다. 속에 든 자기 생각이 분명해도 겉으로는 심후(深厚)하다. 모난 구석을 드러내지 않고, 재주를 뽐내는 법이 없다. 이것은 덕 중에서도 상등 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간심(奸深)이다. 입을 꽉 닫아 마음을 감춰두고 기미를 감추고서 속임수를 쓴다. 움직임을 좋아하고 고요함을 미워하며, 드러난 자취는 어그러지고 비밀스럽다. 두 눈으로 곁눈질하고 한마디 말에도 가시가 있다. 이는 악 중에서도 특히 심한 것이다. 이 두 등급의 사람이 비록 겉모습은 비슷해보여도 찬찬히 살펴보면 큰 차이가 있다. 근래에는 심침한 군자를 간심한 것과 한 가지로 본다. 어찌 경박하게 움직이고 얕고 조급한 자에게서 훌륭한 선비를 찾는 격이 아니겠는가?(人之深者有兩等焉. 一曰深沈, 如訥言自守, 容人忍物. 內裏分明, 外邊深厚. 不露圭角, 不逞才華. 此德之上者也. 一曰奸深. 如閉口存心, 藏機挾詐, 喜動惡靜, 形迹詭秘. 兩目斜視, 片語針鋒. 此惡之尤者也. 此兩等人, 雖若相似, 細察之, 大相徑庭也. 近日以深沈君子, 與奸深竝觀, 豈非以浮動淺躁者, 覓善士哉.)
심침(深沈)은 묵직한 무게감에서 오는 깊이다. 간심(奸深)은 간악한 마음을 감추려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음험함이다. 한 사람은 어눌한 듯 자신을 지키고, 한 사람은 입을 닫아 자기 깐을 따로 둔다. 이쪽은 분명한 자기 주견이 있어도 남을 포용하는 도량이 있다. 저쪽은 매순간 눈빛을 번득이며 무심코 뱉는 한마디 말로도 남을 찌른다.
속 깊은 것과 의뭉한 것은 다르다. 자신을 낮추느라 생긴 깊이와, 틈을 엿보려 만든 깊이가 같을 수 없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이 둘의 구분이 흐려진다. 그리하여 간악한 자가 속내를 숨겨 대인군자 행세를 하고, 상대의 묵직한 깊이를 무능함으로 매도해 이용하고 업신여긴다. 심침과 간심! 이 둘을 잘 분간해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주는 사회라야 건강한 사회다. 가짜들이 설쳐대면 희망이 없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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