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달려오는가
함께 있을 땐 잊고 있다가도
멀리 떠나고 나면
다시 그리워지는 바람
처음 듣는 황홀한 음악처럼
나뭇잎을 스쳐가다
내 작은 방
유리창을 두드리는
서늘한 눈매의 바람
여름 내내 끓어오르던
내 마음을 식히며
이제 바람은
흰 옷 입고 문을 여는 내게
박하내음 가득한 언어를
풀어내려 하네
나의 약점까지도 이해하는
오래된 친구처럼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더 넓어지라고 하네
사소한 일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더 맑게, 크게
웃으라고 하네
/이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