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만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너와의 만남이다. 대인관계(對人關係)를 떠나서 인간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를 떠나서 내가 있을 수 없고, 네가 있을 수 없다. '나는 존재한다.' 라는 명제보다 더 기본적인 명제는 '우리는 존재한다.' 는 명제다. 나는 우리 속의 나요, 너는 우리 속의 너다. 나와 네가 만나는 우리의 마당이 사회다.
사회의 사(社)는 제사(祭祀)를 지내는 공공장소요, 회는 서로 만난다는 뜻이다. 영어의 'Community(사회)'와 'Communion(교제)'은 같은 어원에서 유래한다.
신이나 동물만이 혼자 살 수 있다. 신이나 동물은 완전한 고독 속에서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한 고독 속에서는 살 수 없다. 인간은 완전한 고독 속에 빠질 때 미치거나 비인간(非人間)으로 전락한다. 인간은 그 근원에 있어서 상호조우(相互遭遇)의 존재요, 서로 대화하는 존재다. 나와 네가 모여서 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 나와 너의 존재가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인생은 만남이다. 인생의 만남에는 여러 가지의 형태와 의미가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은 비극적인 사랑의 만남이다. 그들은 뜨거운 사랑의 정열로 젊은 생명을 연소시키고 말았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만남은 인간과 악마의 만남이다. 그것은 빛과 어둠, 선과 악의 대결(對決)이다.
카인과 아벨의 만남은 질투와 살해의 만남이다. 질투의 노예가 된 카인은 분노의 파토스 때문에 자기의 혈육(血肉)의 동생인 아벨을 죽이고 말았다. 그것은 인생의 저주스러운 조우다.
예수와 유다의 만남은 배신(背信)과 가책의 만남이다. 유다는 은(銀) 30냥(兩)에 눈이 어두워서 자기의 스승을 로마의 관헌에게 팔고 양심의 가책 때문에 목을 매고 죽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공자(孔子)와 안연(顔淵)의 만남은 깊은 교육적 만남이다. 두 인격의 조우에서 정신의 높은 향상이 있었고 진리의 대화가 꽃 피었다. 그것은 가장 바람직한 만남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