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처교숙(生處敎熟)
송(宋)나라 때 승려 선본(善本)이 가르침을 청하는 항주(杭州) 절도사 여혜경(呂惠卿)에게 들려준 말이다. "나는 단지 그대에게 생소한 곳은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곳은 생소하게 만들도록 권하고 싶다(我只勸你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 명(明)나라 오지경(吳之鯨)이 지은 '무림범지(武林梵志)'에 나온다.
생소한 것 앞에 당황하지 않고, 익숙한 곳 속에서 타성에 젖지 말라는 말이다. 보통은 반대로 한다. 낯선 일, 생소한 장소에서 번번이 허둥대고, 날마다 하는 일은 그러려니 한다. 변화를 싫어하고 관성대로 움직여 일상에 좀체 기쁨이 고이지 않는다. 늘 하던 일이 문득 낯설어지고, 낯선 공간이 도리어 편안할 때 하루하루가 새롭고, 나날은 경이로 꽉 찬다.
이 말을 받아 조익(趙翼·1579~1655)이 부연했다. "생소한 곳은 마땅히 익혀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곳은 마땅히 연습해 생소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마음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쉬지 말고 익혀서 생소한 곳이 날로 익숙해지고, 익숙한 곳이 날로 생소해지게 되어야 공부가 바야흐로 효험이 있게 된다(生處宜習之使熟, 熟處宜習之使生, 此心術工夫切要之法也. 至於習之不已, 生處日見其熟, 熟處日見其生. 到此, 工夫方始有效矣)." 타성에 젖기 쉬운 일상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처음 접하는 생소한 일을 손에 익은 일처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 단계까지 가려면 쌓아야 할 내공이 만만치가 않다. '도촌잡록(道村雜錄)'에 나온다.
최한기(崔漢綺)도 '추측록(推測錄)'에서 말했다. "사물의 이치를 고요히 관찰해서 추측의 바탕으로 삼고, 사물의 이치를 익숙히 꿰어 추측의 범위로 삼는다. 또 반대로 추측을 가지고 사물의 이치에 징험해 보아, 지나친 것은 물리고, 미치지 못하는 것은 나아가게 하며, 생소한 곳은 익숙하게 하고(生處敎熟), 지나간 일은 뒷일에서 징험한다(靜觀物理, 以爲推測之資, 貫熟物理, 以爲推測之範圍. 反將推測, 符驗于物理, 過者抑退, 不及者企就, 生處敎熟, 往事懲後)." 인생은 결국 생소함과 익숙함 사이의 줄다리기란 말씀!//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