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천하에 해먹기 어려운 일로 '금강산 중노릇'을 꼽았다. 시도 때도 없이 기생을 끼고 절집에 들어와 술판을 벌이는가 하면, 승려를 가마꾼으로 앞세워 험한 산속까지 유람했다. 폭포에서는 승려가 나체로 폭포 물길을 타고 내려와 연못에 떨어지는 쇼까지 했다. 그들은 도대체 한 발짝도 걸으려 들지 않았다. 술 마시고 놀기 바빴다. 접대가 조금만 부실하면 매질까지 했다.
홍백창(洪百昌·1702~?)이 '유산보인(遊山譜引)'에서 산을 유람할 때 경계해야 할 다섯 가지를 꼽았다. 첫째, 관원과 동행하지 말라. 공연히 관의 음식이나 물품에 기대게 되고, 관장이 욕심 사납게 높은 곳까지 말 타고 오를 때 덩달아 따라가다 보면 유람의 흥취가 사라지고 만다. 둘째, 동반자가 많으면 안 된다. 마음이 다르고 체력도 같지 않아 혼자 마음대로 가고 쉬는 것만 못하다. 셋째, 바쁜 마음을 버려야 한다. 일정에 너무 욕심을 내면 거쳐 간 지명만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적어 와 다른 사람에게 뽐내는 꼴이 된다. 시일을 한정하지 말고, 멀고 가까움도 따지지 말며, 마음으로 감상하고 흥취를 얻는 것을 기쁨으로 삼아야 한다. 넷째, 승려를 재촉하거나 나무라면 안 된다. 승려들은 산속의 주인인데 그들을 소와 말처럼 부리고, 작은 허물에도 매질까지 해대니 우선 점잖지 못하다. 또 그들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일부러 아름다운 경관을 감춰두고 보여주지 않으면 결국 내 손해다. 다섯째, 힘을 헤아려 일정을 가늠하고 나서 움직여라. 힘을 3분해서 1분은 가는 데 쓰고 2분은 돌아오는 데 쓴다. 가는 데 힘을 다 쓰면 돌아올 때 반드시 큰 근심이 생긴다. 근력을 헤아려 노정을 따져가며 가고 머묾을 정해야 한다.
박제가는 묘향산 유람을 마친 후 쓴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 끝에 이렇게 적었다. "대저 속된 자는 선방(禪房)에서 기생을 끼고서 물소리 옆에다 풍악을 펴니 꽃 아래서 향을 사르고, 차 마시며 과일을 놓는 격이다." 누가 산속에서 풍악 잡히고 논 기분이 어떻더냐고 묻자 "내 귀에는 다만 물소리와 승려가 낙엽 밟는 소리만 들립디다."라고 대답했다. 어이 산행뿐이랴. 세상 사는 마음가짐도 다를 게 없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