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젖은 바람결이 알몸으로 날아든다.
꽃물 든 아지랑이 같이 살자 꼬드기고
낯붉힌 햇살 한 자락
무지개를 떠 올린다
옹골찬 마디마디 잎이 나고 꽃이 핀다.
불현듯 은밀하게 새살 돋는 가슴앓이
쓸어도 스러지지 않는 숨결 같은 사랑 하나
내 심장이 멎을 듯한 그런 사랑 찾아들면
너를 위해 살고 싶다 너를 위해 죽고 싶다
가슴 끝 저려오는 그리움
꽃비 후두둑 쏟아진다. /홍승표
제대로 맞았거나 바라만 봤거나, 꽃비가 참 많이도 흩고 날리는 철이다. 어디나 만발이요, '알몸으로 날아'드는 것들 천지라 어지러울 지경이다. '물 젖은 바람결'이며 '꽃물 든 아지랑이'만 아니라, 꼬드기는 향기가 진동하니 진득이 들어앉아 있기가 어렵다. 그래도 '너를 위해 살고 싶다 너를 위해 죽고 싶다'고 외치는 어느 저린 가슴에 비하랴.
하지만 더 저린 것은 꽃들조차 온전히 바라볼 수 없는 가슴들이겠다. '옹골찬 마디마디 잎이 나고' 몸 얻은 꽃마다 제 이름값 하고 가건만 못 돌아온 이름 부르다 붓는 눈시울들이겠다. 원 없이 웃고 떠나는 꽃비에 자꾸 되짚어지는 너무 이른 봉오리들의 상실. 이웃도 웃음 여미며 다시 가만 숙이는 즈음….//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