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한때
즐겨 입던
물방울무늬 옷처럼
점점이… 찍고 가는
가랑비에 섞인 복사꽃
진자리 물집 부푼다
아, 달달한
애무 /조민희
꽃차례가 없어졌다. 그 말은 피는 순서를 잊었다는 것. 지는 순서도 버렸다는 것. 아무리 차례가 없어졌대도 꽃 피는 때가 조금씩 다르긴 하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한꺼번에 확 피고 화락 지는 느낌이다. 어느새 피나 했더니 그새 지더라고, 나가 맞지 않으면 지는 꽃잎이나 스쳐 보내는 것이다.
지는 꽃잎이나마 받아 들 수 있다면 꽃의 마음이 돼보는 것. '한때 즐겨 입던' 그리운 시절의 '물방울무늬 옷처럼' 꽃잎들이 '점점이… 찍고 가는' 자취가 아스라이 날린다. 낙화유수 봄날이 하염없이 붉어갈 때 '가랑비에 섞인 복사꽃' 추억 하나 안 꺼내보고 점점이 찍힌 꽃잎을 어이 밟으리오.
그런 중에도 '진자리'마다 '물집 부푼' 대로 열매도 곧 앉겠다. 그러려고 꽃나무들도 온몸이 간지러운가 보다. 아니 '복숭아밭에 내리는 봄비' 속이니 거기 앉힐 복숭아처럼 '달달한/ 애무'라도 닿나 보다. 복숭아의 뽀얀 선을 그리며 침이 고이는 '아, 달달한' 봄내 꽃 내 속이다.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